TED 클레이 셔키: 어떻게 소셜 미디어는 역사를 만들어내는가


 from TED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이란발 소식이 세계적으로 연이어 전해지는 가운데, 클레이 셔키는 페이스북, 트위터, 문자메시지가 압제 하의 시민들이 (잠시나마) 검열을 우회하여 진짜 뉴스를 보도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이야기한다. 위로부터의 뉴스 통제가 끝나면서 정치의 속성을 변화시키고 있다.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변화된 미디어 지형에 관한 것과 또한 전세계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그런 변화가 지니는 의미입니다. 이 변화에 관한 몇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설명해보도록 하죠.

여기서 시작해보죠. 지난 11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신문에서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 지역에 있었던 우려는 투표를 위축시키는 행위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투표장면을 촬영하자는 계획이 제안되었습니다.즉 각각의 시민들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핸드폰을 들고 자신들의 투표소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었죠.혹 어떤 투표 위축 행위가 일어나는지 감시하기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이 기록을 한 곳으로 업로드해서 모으게 됩니다. 그러면 이것이 일종의 시민 감시 기능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민들은 단지 개별적 투표만 하기 위해 투표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선거를 지키는 데에도 전체적으로 일조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는 한 배를 탔다”는 전제에서 생겨나는 패턴입니다. 기술적 자본이 아니죠. 사회적 자본입니다. 이런 도구들이 사회적으로 흥미를 끌게 되는 것은 기술적으로 지루해지고 난 후입니다. 반짝이는 새로운 도구들이 등장하는 바로 그 순간에 사회에 스며드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그 기술을 당연하게 여길 때에 비로소 스며들죠. 그런데 이제는 미디어가 점점 더 사회적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혁신이 어디에서나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가 한 배를 탔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다면 말이지요. 그래서 이제 우리가 마주하기 시작한 미디어 지형에서는 모든 곳에 걸쳐 혁신이 일어나고 그 혁신이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전이됩니다.

이것은 거대한 변화죠. 노골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실로 역사적인 우리 세대가 살아가는 지금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크게 표현능력이 증가한 시대입니다. 커다란 주장이기는 합니다. 근거를 보충해보도록 하죠.

지난 500년간을 돌아보면 ‘혁명’이라고 이름붙일 만큼 미디어가 크게 변한 것은 네 번 뿐입니다. 첫번째는 유명하죠. 인쇄입니다. 활자, 유성잉크 등 일련의 혁신들 덕분에 인쇄가 가능해지게 되었으며 그리고 1400년대 중반부터, 유럽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지금으로부터 200년쯤 전에 쌍방향 소통의 혁신이 있었습니다. 대화형 미디어가 처음에는 전신, 다음에는 전화의 형태로 나타났죠. 느리고 문자에 기반한 대화들로부터, 실시간 음성 기반 대화로 나아간 것입니다.
다음은 150년 정도 전에 인쇄 이외의 기록 매체의 혁신이 있었습니다. 먼저 사진, 그 뒤에 소리, 그리고 동영상까지 모두 물리적 사물 위에 부호화되어 기록되게 되죠. 마지막으로 약 100년 전, 전자기 스펙트럼을 이용하여 공중으로 소리와 화상을  전달하는 것이 등장했습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이죠. 이것이 20세기에 우리가 알고있던 미디어 지형입니다. 우리 중 특정 연령대는 이 환경에서 성장했고 거기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이 미디어지형에는 흥미로운 비대칭성이 있습니다. 대화를 만드는 것에 탁월한 미디어는 집단을 만드는 것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집단을 만드는 것에 적합한 미디어는 대화를 만들기에 부족하죠. 이 세계에서 대화를 하고 싶으면, 한 명의 상대와 합니다. 집단에게 말을 걸고자 하면, 똑같은 메시지를 집단 속의 모두에게 전달합니다. 방송탑을 사용하든 인쇄기를 사용하든 말이죠. 20세기에 우리가 지녔던 미디어 지형이 그랬습니다. 

바로 이것이 바뀌었습니다. 자동차 앞유리에 부딪힌 공작새 같이 생긴 이 그림은, Bill Cheswick이 작성한 인터넷 지도입니다. 개별 네트웍의 모서리들을 추적해서 색깔로 코딩한 것이죠. 인터넷은 생겨날 때부터 집단과 사적 대화를  모두를 지원하는 역사상 최초의 매체입니다. 전화는 우리에게 일대 일이라는 패턴을 주었습니다. 텔레비젼, 라디오, 잡지, 책은 일대 다수라는 패턴을 주었죠.
 
인터넷은 다수대다수라는 패턴을 주었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미디어가 이런 종류의 대화들을 탁월하게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커다란 변화 가운데 첫번째죠.  두번째의 큰 변화는,  모든 미디어가 디지털화되면서 인터넷은 모든 다른 미디어를 실어나르는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전화통화가 인터넷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잡지가 인터넷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동영상이 인터넷으로 옮겨갑니다. 이것의 의미는, 모든 미디어가 다른 모든 미디어들과 바로 이웃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미디어는 갈수록 그저 정보의 원천에 머물지 않게 된다는 것이죠. 점점 더 조정의 공간이 되어갑니다. 무언가를 보고 듣는 집단들이 이제 같이 모여서 서로와 대화를 할 수도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세번째의 큰 변화는, Dan Gilmore의 표현을 빌자면 “한 때는 청중”에 속했던 이들이 이제는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명의 새로운 소비자가 이 미디어 지형에 들어오는 것은 다시 말해 새로운 생산자가 한 명 들어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핸드폰, 컴퓨터 등 똑같은 장비들이 소비와 생산을 동시에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죠. 마치 책을 사면 공짜로 인쇄기를 끼워주는 격입니다. 마치 버튼을 잘 누르면 라디오 송신기가 되는 전화기를 가진 격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익숙해진 미디어 지형에 일어난 큰 변화입니다. 그저 인터넷인가 아닌가의 문제도 넘어섰습니다. 형식의 인터넷이 이제 거의 20년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여전히 변화하고 있죠. 미디어가 더욱 사회적이 되어감에 따라서 말입니다. 심지어 인터넷을 잘 다루는 법을 안다고 생각하는 집단 사이에서도 여전히 패턴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 5월, 중국 사천성 지역에는 진도 7.9짜리 끔찍한 지진이 있었습니다.  리히터스케일 기준에서 보듯, 넓은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죠. 그런데 그 지진은 발생하던 그 순간 보도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건물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건물이 흔들리는 동영상을 녹화했습니다. 그것들을 중국 최대의 인터넷 사이트 QQ에 업로드했습니다. 트위터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지진이 일어나는 중에 뉴스가 보도되게 되었죠. 게다가 사회적 인간관계 때문에, 다른 곳에 가고 있거나, 등교 중이던 중국의 학생들과 중국에 사무실을 개업한 세계의 기업들에게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전세계의 사람들이 이 뉴스를 듣고 있었습니다. BBC는 트위터를 통해서 중국의 지진을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트위터에서 지진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 것은 미국 지질조사국이 온라인에 보고서를 올리는 것보다도 수 분 전이었습니다. 중국에서 그 정도의 지진이 일어났던 지난 번에는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시인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습니다. (웃음)  이 경우에도 그렇게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죠. 이런 사진들이 온라인에 풀리는 것을 보기보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선택이 주어지지 않았죠. 시민들이 펀치를 먹였기 때문입니다. 정부조차 시민들로부터 지진발생을 알게 되었죠. 신화 뉴스통신사가 아니라요. 그리고는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한동안 전지구적 단문메시지 서비스인 트위터의 가장 많이 클릭된 10가지 링크 가운데 9개가 지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정보를 취합하는 사람들, 관련 뉴스 링크를 알려주는 사람들, 미국 지질조사국으로 연결해주는 사람들.10위는 쳇바퀴 타는 고양이에 관한 것이었는데, 인터넷이란 게 그렇죠 뭐.  (웃음)
 
하지만 최초의 몇 시간 동안 10개 중 9개가 그랬습니다. 또한 반나절 안에, 모금 사이트들이 올라왔죠. 전세계에서 모금이 쏟아져들어왔습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잘 조정된 전지구적 반응이었습니다. 가끔 한번씩 미디어를 개방하는 시기였던 당시의 중국 정부는 그냥 미디어를 내버려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시민 보도를 흘러가게 두자고 한 것이죠. 그러자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알아내기 시작한 바로는 사천성에서 그 많은 학교들이 붕괴한 이유가, …지진이 비극적이게도 학교수업시간 중에 일어났었죠. 그러니까 학교건물들이 많이 무너진 이유는  부패한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부실공사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민기자들은   그 이슈도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사진 한 장이 등장합니다. 여러분도 뉴욕타임즈 일면에서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지역 공무원 한 명이 문자 그대로 시위대 앞에서 길 위에  엎드렸습니다. 시위대를 돌려보내기 위해서 말이죠. 기본적으로 이런 말이죠: “여러분을 진정시키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제발 공개적으로 시위만 하지 말아 주세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과격해진 이들이었습니다. 아이를 하나만 낳기 정책 때문에,  그들은 다음 세대 전부를 잃었던 것이죠. 외동자식의 죽음을 본 이라면, 이제 더 잃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위는 계속되었죠. 마침내 중국정부가 단속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미디어는 이제 그만, 이라는 식으로. 그래서 시위대를 체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위가 벌어지는 미디어들을 폐쇄하기 시작했죠. 

중국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인터넷 검열 관리자일 것입니다.  흔히 인터넷 만리장성(Great Firewall of China)라고 부르곤 하죠. 그런데 인터넷 만리장성은 몇가지 가정 위에 세워진 일련의 감시 관측소 같은 것입니다. 미디어가 직업적 생산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외부 세계에서 대부분 흘러들어오고, 비교적 드문드문 덩어리로 들어오며, 비교적 천천히 온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4가지 특징 덕분에 자국으로 흘러들어오는 순간에 필터링 할 수 있다는 발상입니다. 하지만 마지노선의 요새처럼, 인터넷 만리장성 역시 잘못된 방향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번 경우에는 말이죠. 네 가지 가운데 하나도 이번 환경에는 맞아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미디어는 현지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아마추어들이 제작했죠. 빨리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이 만들어져서, 나타나는 순간 필터링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십수년간 꽤 성공적으로  웹을 필터링해온 중국 정부가, 이제 결정해야할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서비스들을 통째로 차단해야 할 것인지 말이죠. 아마추어 미디어로의 변신이 너무나 엄청나서 다른 방식으로는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죠.   사실 바로 이번 주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천안문 20주년을 맞이하여, 중국정부는 이틀전 트위터 접속을 아예 차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른 식으로 필터링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입구를 통째로 틀어막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들은 메시지를 검열하려는 이들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죠. 메시지를 보내려는 이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실 생태계 전체의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전략 하나의 변화가 아닙니다.20세기의 고전적인 미디어 문제는 하나의 조직이 자신의 메시지를 네트워크의 가장자리에 분산되어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입니다. 20세기의 해답은 이렇습니다: 메시지를 묶으세요. 같은 메시지를 모두에게 보내세요. 전국적인 메시지, 표적화된 개인들. 비교적 적은 수의 생산자들. 실행하려면 비용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경쟁도 그다지 많지 않죠. 이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도달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제는 끝났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미디어가 전세계적이고 또한 사회적이고, 어디에나 존재하고, 저렴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부분의 조직들이 메시지를 외부 세계에, 분산된 청중들을 향해 전달하고자 할 때 이 변화에 익히 알고 있습니다. 청중들은 말을 걸어 올 수도 있다는 것이죠. 약간 기묘한 일이죠. 하지만 어느정도 지나면 다들 그렇듯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복판에서 겪고 있는 진짜 엄청난 변화는 따로 있습니다. 진짜 엄청난 변화는 바로 여기에 있죠. 그들이 더 이상 서로로부터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한 때 소비자였던 이들이 이제는 생산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청중들이 서로 직접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프로보다는 아마추어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죠. 네트워크의 크기, 네트워크의 복잡성은 사실 참여자 숫자의 제곱입니다. 즉 네트워크는 커지면 엄청나게 커집니다.  최근 10여년 정도만 하더라도 대중이 소비할 수 있었던 대부분의 미디어는 전문가들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그 시대는 이제 끝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이제는 이 초록색 선들이 무료 콘텐츠의 소스가 되어줍니다.

그럼 마지막 이야기로 넘어가보겠습니다. 사회적 미디어의 가장 창의적인 활용법을  우리는 오바마 대선 캠페인 동안에 볼 수 있었죠.  정치분야에서의 가장 창의적 활용 정도가 아닙니다. 모든 분야 통틀어 사상 최고로 창의적인 활용 말입니다. 오바마가 한 것들 중에 유명한 것 중 하나는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바마 캠페인 진영에서는 MyBarakobama.com, myBO.com을 만들었습니다. 수백만의 시민들이 참여하고자 그리고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궁리하기 위해 몰려왔죠. 그곳에서는 믿기 힘들 정도로 창의적인 내용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작년 이맘때쯤 오바마는 FISA에 관한 자신의 표를 변경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해외정보감시법 말입니다. 1월에 그가 말하기를,  영장 없이 미국인들을 도청해도 통신회사가 책임이 없게 되는 법안에 서명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름 즈음, 일반 대선 캠페인 한복판에서 그는 “이 이슈를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 법안을 찬성하겠습니다” 라고 했죠. 그의 사이트를 방문하는 지지자 상당수가 매우 공개적으로 광분했습니다.  처음에 만든 소모임 이름은 ‘오바마 의원님’이었죠. 나중에 명칭을 바꿨습니다.’제발 FISA를 제대로 해주세요’.만들어진 후 수일 내에 myBO.com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만들어진 후 수 주 내에 가장 큰 모임이 되었죠. 오바마는 보도자료를 발표해야 했습니다. 답변을 해야만 했죠. 그의 주장의 핵심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이 사안을 고려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의견이 어떤 것인지 이해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고려하고 난 지금, 여전히 원래대로 표를 던질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보며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제게 반대하심을 이해하고, 이 사안은 제가 비난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죠. 하지만 대화 속에서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모임의 사람들은 오바마가 그들을 결코 침묵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오바마 캠페인 진영의 누구도 그 모임을 숨기거나 가입을 더 어렵게 만들거나 존재를 부정하거나 지우거나 사이트에서 내려버리려고 하지 않았죠. 선거 캠프 진영의 사람들은 myBO.com 에 대한 역할이 지지자들을 소집하는 것이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종류의 규율이 미디어를 정말로 성숙하게 사용하기 위한 필수요소입니다. 미디어, 우리가 과거에 알고 있는 미디어 지형은 무척 익숙했었고, 그 개념에 있어서  직업적 생산자들이 메시지를 아마추어들에게 전달한다는 발상을 쉽게 다룰 수 있었던 그 미디어는 이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미디어가 전지구적이고, 사회적이고, 어디에나 있고, 저렴한 세계에서, 한 때의 청중들이 이제는 점점 더 온전한 참여자가 되어가는 미디어의 세계에서, 그런 세계에서 미디어는 점점 개개인이 소비하도록 고안된 단일한 메시지를 만드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앞으로 미디어는 점점 더 집단을 소집하고 지원하기 위한 환경을 만드는 방식에 관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직면하게 될 선택은, 그러니까 세계 어디라도 누가 들어줬으면 하는 메시지를 가진 이라면 누구나 내려야할 선택은, 현재 이런 변화가 우리가 활동하고 싶어하는 미디어 환경인지 아닌지가 아닙니다. 이 미디어 환경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모두들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이 미디어를 어떻게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가? 늘 해오던 방식을 바꿔야함에도 불구하고.” 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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