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한국통신 파업투쟁의 기억 (go KTTU)

5출처 : 네트워커 http://networker.jinbo.net/nw-news/show.php?docnbr=789

한국통신노동조합 CUG폐쇄사건 – 하나

김형준 / 전 참세상운영자
smallake@nextware.co.kr


90년대 초반 PC통신의 가능성을 미리 예견하고(?) 온라인동호회나 사설 BBS활동으로 영역을 넓혀가던 사회운동에 PC통신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게 한 계기를 제공해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CUG(Clused User Group: 폐쇄 이용자 그룹)를 매개로 하여 PC통신 혹은 뉴미디어를 사회운동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뚜렷한 모범(?)을 보여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사회제도에 대한 인식과 투쟁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하는 계기였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95년에 한국통신노동조합이 ▲임금가이드라인 철폐 및 임금 현실화 ▲통신시장개방 반대 ▲재벌위주의 민영화 반대를 내건 노동쟁의를 벌이자, ‘국가전복’ 운운하며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해 대대적인 수배령을 내리는 등 전면탄압을 하는 가운데, 수배된 지도부가 CUG(하이텔, go KTTU)를 통해 투쟁지침을 하달함으로써 전국 각지 수백 개 지부 4만 명에 이르는 조합원들의 투쟁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매개 역할을 톡톡히 하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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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행위로 고소 고발된 노조 핵심간부 64명에 대한 일제 검거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유덕상 노조위원장 등 노조집행부가 잠적중인 상태에서 PC통신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행동지침을 내려보내 검찰과 경찰 그리고 회사측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한 것. 노조는 지난 19∼21일 전남대에서 열렸던 임시비상대의원회의도 PC통신 하이텔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 했는가 하면 조합원들에게 알리는 고지사항도 어김없이 PC통신을 활용, 노조활동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배가시켜 왔다.”
(국민일보 1995. 5. 22)

“ … 노조는 이날 PC통신 하이텔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출근시간 지키기와 함께 ▲1인 1소자보 작성 ▲「기본급 8만원 인상과 생계비 보장」 현수막 부착 ▲25일부터 6월1일까지 대국민홍보 ▲PC통신 하이텔과 천리안을 이용한 홍보강화 ▲민노준과 공노대의 노동자집회 적극 참석등 위원장 투쟁명령을 보냈다.”
(한국일보 1995. 5. 25)

“한국통신 노동조합 PC통신 게시판의 조회건수가 국내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한국통신 노조원들이 최근 PC통신 하이텔을 통해 띄우고 있는 글의 평균 조회건수가 매일 7천∼8천 건에 달하고 있다. 유덕상(40) 위원장이 24일과 25일에 잇달아 띄운 글은 1일까지 조회건수가 1만1천 건을 넘어섰다. 23일 한 노조원이 올려놓은 「명동성당 투쟁속보」는 조회건수가 1만2천 건을 넘는 기록을 세웠다.”
(한국일보 1995. 6. 2)
95년 봄 보라매공원에서 있었던 통신노동자들의 집회에 결합했었다.
전학투련이었나..? 그땐 전OO련, 전OO맹 등등..워낙 많았던지라.
그해 4만이상 대규모 사업장의 춘투는 한통이 처음이었고,
또, ‘국가전복’운운하며 정권의 협박이 워낙 치졸했던지라,
그해 봄은뜨거웠었다.
94년 명동성당, 경희대.. 전지협 파업
95년 보라매공원.. 한통노조파업
96년 종로거리, 백양로..노수석, 5월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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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봄은 늘 그랬지만.
96년 암튼 대학 캠퍼스를 누비며 농성하던 투쟁방식에서, go KTTU와,
투쟁속보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온라인으로 결합할 수 있었던 경험은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었다.
큰마을에서 플라자에서 시시각각으로 올려지는 속보를 보면서
그리고 집회후기를 올리면서
보이지 않은 수많은 대중과 함께 있음을 느꼈던
전율 비슷한 것이 새삼기억났다
벌써 10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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