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950 전쟁과 평화






한국 1950 전쟁과 평화8점
박명림 지음/나남출판

… 전남의 불갑산 지역은 한국전쟁을 전후로 이 지방 빨치산들의 핵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정작 소용돌이의 눈이었던 영광군 불갑면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당시 65세로 일자무식이었던 강내원은 6.25 이전에 좌익활동을 했던 아들 3형제를 남한경찰에 의해 모두 잃었다. 그는 흔히 말하는 농투성이의 젼형이었다. 그의 적의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인공 치하가 시작되자 불갑면민들은 만장일치로 강내원을 인민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경찰과 우익은 예정된 보복에 긴장하였고 다가올 사태에 대해 단단히 각오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개인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그는 인민위원장 취임 이후 경찰과 우익 인사들 누구에게도 불이익을 가하지 않았다. 주민들의 증언에 바탕한 기록에 따르면그는 보복학살은 커녕 단 한명에게도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마을은 평화로웠고 이장을 비롯해 6.25 이전 우익들이 계속 자기자리를 지키기도 하였다.


강내원은 전쟁을 시작한 지도자들처럼 거창하게 민중, 민족, 혁명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실천은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강내원의 행동은 개인의 상처를 넘어설 때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덕성의어떤 경지를 보여줌은 물론, 그것이 끼치는 사회적 파장에 대해 깊이 상념케 한다. 그는 우리에게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념을 넘어 생명을 구원하는지 인간정신의 한 감동적 지경을 보여준다. (p.257)



통일을 목표로 시도된 전쟁은, 통일을 초래한 것이 아니라 분단을 고착시켰고, 남한에 공산체제를 이식시킨 것이 아니라 반공체제를 강화시켰다. 이 점에 비추어 보면, 급진주의는 통일에 기여한 것이 아니라 분단의 고착화에 기여하였던 것이다. 유럽의 혁명역사에서도 자주 확인되었듯 근본주의적 급진주의는 혁명이 아니라 반혁명에, 진보가 아니라 반동에 기여한다. (p.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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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절멸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면서

적대적 대결구도를 기반으로 하여 유지되었던 분단체제가 5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책에서 언급된 늙은 촌로의 감동적인 실화는

‘머를 많이 멕이야지 뭐”라고 하던 어느 영화속 촌장의 대사를 연상시킨다.

그를 통해, 밥한끼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북쪽 사회주의 정권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던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그 대사는 정말 말 그대로의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임진각에서,남과북의 하늘은 하나로 잇닿아 있었고

그 위를 철새들은 한가롭게 왕래하고 있었다.





One Comment

  1. 제 블로그에 담아가겠습니다.
    좋은 책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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