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스위지



미 좌파 지식인 폴 스위지 (1910-2004) 영면
인간의 해방과 자유에 대한 뜨거운 헌신으로 일관해온 인생


미국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대부 폴 스위지(Paul M. Sweezy)가 지난 2월 27일, 94세를 일기로 영면(永眠)했다. 미국 마르크스주의 운동사에서 그가 차지해온 위치와 역할, 특히 발행부수가 1만부도 채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르 몽드 디쁠로마띠끄 (Le Monde Diplomatique)> 못지않게 전 세계적 영향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독립적 좌파 월간지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 창간인이라는 그의 삶이 남긴 궤적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50년 이상 그가 꾸준히 갈파하고 치밀하게 분석해온,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야만성이 보다 심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그가 남긴 지적 유산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게 하고 있다. 근 1세기에 걸친 그의 인생은 인간의 진정한 해방과 자유에 대한 뜨거운 헌신으로 일관해왔고, 이 시대의 모순을 돌파하려는 용기와 양심을 가진 비판적 지식인들과 세계민중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연대의 공간”, 즉 이론과 현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왔던 것이다.

약관 32세에 역작 <자본주의 발달 이론> 출간

1942년, 폴 스위지는 약관 서른 두살에 <자본주의 발달 이론 (The Theory of Capitalist Development): 부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 원리 Principles of Marxian Political Economy>을 출간, 그 나이에 이미 뛰어난 이론적 실력을 갖춘 진보적 경제학자로서 고전적 명성을 얻게 된다. 미국 정치의 근본적 혁파를 겨냥한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 입문서라고 할 이 책의 출간은 자본주의 경제의 끊임없는 발전과 번성에 대한 사회적 신념이 지배하고 있던 미국 사회에 일격을 가한 셈이었다.

또한 폴 스위지의 <자본주의 발달 이론>은 50년대~70년대에 걸쳐 좌파 지식인 세대를 길러내는 책이 되는데 이보다 한 십년 앞선 1934년에 미국 공산주의 운동의 최고 이론가 루이스 코리(Lewis Corey)가 펴낸 <미국 자본주의의 쇠락(The Decline of American Capitalism)> 이후 미국 좌파운동이 얻게 된 귀중한 이론적 성취였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1940년대 당시 미국 좌파 운동권의 일반적 이해에 대한 비판의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 미국 좌파 운동은 대체적으로 정치와 경제에 대한 총체적 분석, 계급투쟁의 정치적/실천적 의미 등을 치밀하게 밀고나가기보다는 기계적 유물론에 따른 경제주의적 환원론, 즉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가 심화되어 가면 자본주의 체제는 저절로 붕괴되어갈 것이라는 생각에 깊이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었다. 유럽 파시즘의 등장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에 따른 수세국면으로만 파악했던 제3인터내셔날의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인식은 파시즘 세력에 대한 치열한 투쟁을 어느새 약화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굳이 혁명적 방식이 아니고라도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개혁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올 수 있다는 견해를 미국 좌파 운동권 내부에 유포시켰다. 이에 반해 폴 스위지는 혁명적 변화를 추구하는 역사적 의지가 계속 축적, 정치적으로 발휘되지 않고서는 인간에 대한 착취와 억압, 그리고 빈곤과 전쟁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 모순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소수 특권계급의 이윤과 권력이 아닌, 인간의 필요에 봉사하는 체제 추구

이와 같은 그의 이론적 좌표는 특권적 소수의 이윤에 봉사하는 체제가 아니라 대다수 인간의 필요를 위해 봉사하는 체제로 정치경제적 질서의 혁명적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 양심을 가진 지식인의 임무라는 자세를 평생을 통해 견지하도록 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가 당시 하바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었고, 런던 정치경제 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케인즈 연구를 했다는 경력으로도 세간의 이목은 그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동부 뉴잉글랜드의 상류계층 출신으로 최고수준의 교육을 받은 그가 자신의 일신적 안락을 위해 기성질서의 옹호와 유지에 힘을 쏟기보다는, 일부 소수 지배계급의 부와 권력을 위해 빈곤과 착취, 억압과 폭력이 제도화되고 있는 현실에 저항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사회적 역할은 단지 연구에 몰두하는 강단학자로서 그치지 않았다. 폴 스위지는 마르크스의 말대로, “지식인의 임무는 현실을 해석하는 것에 있지 않고 현실을 바꾸는 것에 있다”는 신념으로 그의 역사적 헌신의 영역을 정치사회적으로 확대해갔던 것이다.

3선을 했던 루즈벨트 대통령 시기에 한차례 부통령을 지냈고 1944년에는 상무성 장관을 역임한 헨리 월러스(Henry Wallace)가 1948년, 미국 공산당과 연계를 갖지 않은 독립적 좌파세력의 정치조직 진보당(Progressive Party)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 폴 스위지는 현실 정치에 뛰어든다. 헨리 월러스는 트루만 정권이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을 하나하나 파괴해나가고 대외정책이 극단적인 반공(Anti-Communism)으로 기울면서 뉴딜 정책 시기에 형성되었던 진보세력과 자유주의세력 간의 대연대가 유지해온 기반이 무너지자 이에 반발, 진보당을 기반으로 대권에 도전했던 것이다.

하지만 월러스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개량주의적 정책비판에 머물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득표로 패배한다. 이러한 정치상황 앞에서 폴 스위지는 진보세력과 자유주의 세력간의 연대에 기초한 인민전선(Popular Front)적 투쟁방식에 대한 반성과 함께, 보다 근본적인 혁명성을 가진 지식인 연대의 공간을 마련하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매카시즘의 광풍 한 가운데서 <먼슬리 리뷰> 창간

바로 이와 같은 배경 아래 태어난 것이 이후 미국의 좌파진영에서 오늘날까지 정파적 차이를 넘어서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먼슬리 리뷰>이다. 폴 스위지의 삶과 <먼슬리 리뷰>의 반세기 이상의 역사는 서로 떨어뜨려 생각하려야 생각할 수 없는 관계를 갖게 된다.

<먼슬리 리뷰>가 등장하게 된 1949년은 미국의 진보세력에 대한 일대 탄압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기 시작한 때였다. 헨리 월러스를 대통령 후보로 내보낸 진보당조차도 청문회와 수사대상이 되어가는 상황이었으니 독립적 마르크스주의 진영의 결집을 내세운 <먼슬리 리뷰>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 발상자체로서도 무모했을 뿐만 아니라 대단한 용기와 각오가 아니면 되지 못할 일이었다.

<먼슬리 리뷰>를 창간하기 전, 폴 스위지는 1946년 영국 마르크스주의 경제사학자 모리스 돕(Maurice Dobb)의 <자본주의 발달 연구(Studies in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에 대한 이행기 논쟁을 통해 서구 좌파 논쟁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함으로써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지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러한 명성이 함께 뒷받침 되었기에 <먼슬리 리뷰>의 창간은 이 시기 하나의 중대사건이었다.

폴 스위지는 대공황기인 1930년대에는 당시 미국 민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미국 공산당의 입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했으나, 이후 지식인으로서의 독자적 위상을 지키기 위해 정당조직과의 관련을 끊고 이른바 독립적 좌파 운동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먼슬리 리뷰>는 바로 그러한 그의 운동사적 궤적의 결과이기도 했다. <먼슬리 리뷰>의 실질적인 출발은, 그 자신 좌파는 아니나 사회적 관심이 깊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폴 스위지와 하바드 대학 동료교수이자 헨리 월러스 선거운동에도 함께 했고 이미 1935년에 하바드 교수노조 결성에 동지적 연대를 했던, 미국 문학의 권위 매티슨(F.O. Matthiessen)이 예기치 않게 받은 유산을 기증받아 이루어질 수 있었다.

독립적 좌파 운동의 주도

물론 광란의 빨갱이 잡기(redbaiting)로 미국사회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시기의 좌파 월간지 출범과 그 항해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폴 스위지는 1953년 뉴 햄프셔 주 검찰에 소환되어 매카시즘의 공세 속에서 투옥의 위기에 처했었으며, 폴 스위지와 함께 <먼슬리 리뷰>의 창간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리오 휴버먼(Leo Huberman 1903-1968) 역시 그보다 앞선 1952년, 의회의 비미국인 활동 청문회(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에 소환되어 사상검증의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모두 미국 헌법의 언론자유에 대한 조항을 들어 자신들의 발언과 활동, 그리고 책 출간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매카시즘의 공세에 정면으로 맞섰다.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헌법정신으로 살아 있는 한 자신들의 생각과 표현이 국가적 질문과 추궁의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좌파운동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방어해내었던 것이다.

이들은 미국 공산당의 노선과 활동내용에 동조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공산당 활동을 불법화시키는 것에도 반기를 들었다. 특히 폴 스위지는 매카시즘이 결국 미국 내 진보세력을 사회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내부적으로는 독점자본과 군사주의세력의 파시즘적 지배 행태를 만들어낼 것을 예견했고, 이는 제국주의로 치닫고 있던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세력을 침묵시키려는 고도의 지배전략임을 갈파했다.

매카시즘의 고조기에 <먼슬리 리뷰>는 겉이 보이지 않도록 포장해서 발송했어야 했고, 기고자들도 “어느 대학의 사회과학 교수가”라는 식으로 익명의 방식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좌파 내지는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것이 알려질 경우에 가해질 사회적 매장에 대한 지극한 공포가 지배하고 있던 시대에 등장한 <먼슬리 리뷰>는 실로 대단히 놀라운 용기를 가진 것이었으며 폴 스위지는 이러한 작업의 선두에 서서 미국 좌파운동의 새로운 발판을 마련했다.

흥미로운 것은, <먼슬리 리뷰> 창간호에 전 세계적으로 천재와 동일어로 인식되고 있던 아인슈타인이 “어찌해서 사회주의인가?(Why Socialism?)”라는 기고문이 게재됨으로써 진보진영의 영역이 대중적 상식을 넘어선 분야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실이다. 아인슈타인은 사회주의에 대한 공적 논쟁이 정치적 금기사항으로 강제되고 있는 현실에서 <먼슬리 리뷰>가 이에 대한 정당한 논의의 장을 펼쳐줄 것을 주문, 맥카시즘의 파고가 좌파 운동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촉구한 것이었다.

한편 아인슈타인의 이러한 진보적 사회관은 미국 정부 당국을 당혹하게 했는데 그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하기 어려웠던 미국 정부는 아인슈타인을 “천진난만한 과학자”정도로만 대중적으로 인식시키는 프로파간다를 펼쳤고, 이러한 영향은 지금까지 남아 있을 정도이다. 폴 스위지와 먼슬리 리뷰는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의 이념적 지배전략과 맞서 싸움으로써 대중들의 역사적 의식을 각성시키고, 좌파 진영의 대중적 위상을 높이는 작업에 진력을 다했던 것이다.


<먼슬리 리뷰>를 통해 활동한 폴 스위지의 주변에는 이후 미국 독립적 좌파 운동의 흐름을 만들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지대하게 미치고 있는 좌파 지식인들이 운집하게 된다. 특히 리오 휴버먼, 폴 바란(Paul Baran), 그리고 1968년 이후 해리 매그도프 (Harry Magdoff)등은 폴 스위지와 함께 <먼슬리 리뷰>를 무대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좌파 지식인 군단을 형성한다.

리오 휴버먼의 경우 스물 아홉 살의 나이에 <우리들 인민(We, the People)>이라는 미국 민중사를 1932년 출간했으며, 4년 뒤인 1936년에는 대중들을 위한 자본주의 경제사 <인간의 재화(Man’s Worldly Goods)>를 내놓았고 이는 이러한 분야의 책으로서는 당시 경이적인 수치인 50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는 등 진보적 지식인으로서의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휴버먼은 창간시기부터 그가 1968년 사망할 때까지 폴 스위지와 함께 <먼슬리 리뷰>의 발전을 책임졌었고, 1960년 폴 스위지와 쿠바 혁명에 대한 실질적인 분석(Cuba: Anatomy of a Revolution)을 내놓아 미국의 대 쿠바 정책이 가지고 있는 기만과 위선을 폭로하는 동시에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을 새롭게 조명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폴 바란(1910-1964)만큼 마르크스 경제학자로서 폴 스위지의 지적 탐구의 깊이를 심화시킨 동지도 없을 것이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로서 매카시즘의 시기에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드문 경우로서, 1957년 그가 내놓은 <성장의 정치경제학(The Political Economy of Growth)>은 세계경제의 제국주의적 구조에 의한 제3세계의 빈곤문제를 집중적으로 분석, 이후 종속이론의 중요한 전거가 되었다. 그의 사후 폴 스위지가 내놓은 바란과의 공저인 <독점자본(Monopoly Capital)>은 미국 자본주의의 본격적인 정치경제학적 규명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그 영향력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리오 휴버먼, 폴 바란, 해리 매그도프, 해리 브레이버만 등 기라성 같은 지식인 군단

휴버먼이 사망한 후 1968년 <먼슬리 리뷰>에 합류한 해리 매그도프(1914-)는 폴 스위지로 하여금 <먼슬리 리뷰>가 제국주의 문제에 대하여 보다 분명한 입장과 분석을 심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게 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 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인 1966년, 매그도프의 <제국주의의 시대(The Age of Imperialism)>를 필두로 하여 폴 스위지가 매그도프와 함께 작업한 경제학적 작업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가령, <스태그네이션과 금융시장의 폭발(Stagnation and the Financial Explosion) 1982> 또는 <돌이킬 없는 위기(The Irreversible Crisis) 1988>등에서 제기된 미국 자본주의 실물경제가 처하게 되는 금융시장의 혼란과 부채경제의 심화, 그리고 노동자들의 빈곤 문제에 대한 분석은 오늘날 미국 경제가 처하고 있는 모순을 명확히 예견한 탁월한 견해와 이론적 해명이라고 할 수 있다. 폴 스위지와 매그도프의 경제 분석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유럽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대체로 거대담론에 대한 논쟁에 파묻히는 반면, 이들은 매우 구체적인 현실을 분석대상으로 하여 생생한 실물적 접근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론적 경향은 이른바 주류경제학의 실물분석역량을 능가하는 구체성을 증명해냄으로써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이 이데올로기적 수사로 머물지 않게 하는 길을 열었다.

노동운동가이자 잡지 편집자 출신의 해리 브레이버만(Harry Braverman 1920-1976)이 폴 스위지의 작업에 합류한 것은 <먼슬리 리뷰>의 지평을 새롭게 넓힌 사건이기도 했다. 그의 <노동과 독점자본(Labor and Monopoly Capital) 1974>은 바란과 스위지가 함께 분석했던 독점자본의 대척점에 있는 노동문제를 파고들었으며, 이 책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최고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먼슬리 리뷰의 출간목록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이렇게 폴 스위지 자신의 정치경제학, 휴버먼의 진보적 역사관, 바란의 제3세계 정치경제학, 매그도프의 제국주의 분석, 브레이버만의 노동문제 분석 등으로 다양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영역을 개척해나간 <먼슬리 리뷰>는 이후에도 영국 좌파 계간지 <뉴 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의 편집위원 앨랜 마이크신즈 우드(Ellen Meiksins Wood)등과 같은 제2, 제3세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을 꾸준히 발굴, 등장시킴으로써 미국 좌파운동의 흐름에 큰 획을 그었다.

폴 스위지와 <먼슬리 리뷰>의 성장사를 이야기할 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먼슬리 리뷰 출판국(Monthly Review Press)>의 시작이다. <먼슬리 리뷰> 하나를 꾸려나기에도 벅찼던 폴 스위지는 진보적 언론인으로 명성을 높였던 아이 에프 스토운(I.F.Stone)이 미국의 냉전형 대외정책을 비판하면서 기성의 대중적 상식과는 배치되는 한국전 관련 원고가 어디에서도 출판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알게 된다.

<먼슬리 리뷰 출판국>의 출범과 I. F. 스토운의 <한국전 비사(秘史)>

폴 스위지는 스토운과 같은 언론인의 발언이 사장되는 것은 진보적 대의에도 어긋난다면서 매카시즘이 밀어내고 있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출판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좌파 운동의 영역으로 인식, 스토운의 책을 내게 되는데 그것이 오늘날 한국전과 관련한 고전적 저서로 남게 된 <한국전 비사(The Hidden History of the Korean War) 1952)이다. 이 책의 제목도 폴 스위지가 제안한 것으로서 미국의 한국전쟁과 관련한 공식적 설명이 은폐하고 있는 진실을 규명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이후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1981>을 쓰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지적 충격을 주는 근거가 되었다는 점에서 폴 스위지의 지식으로서의 용기가 오늘날의 우리와 어떤 인연을 맺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먼슬리 리뷰 출판국>의 영향력은 어쩌면 <먼슬리 리뷰> 자체보다도 더 강력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수정주의 역사학의 대부인 윌리암 애플만 윌리암즈(William Appleman Williams)가 <먼슬리 리뷰>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가 왕성한 활동으로 명성을 얻게 되는 1960년대가 아니라 이미 1952년부터였으며 그의 저서 <미국, 쿠바, 카스트로(The United States, Cuba and Castro) 1963>등을 비롯하여 <먼슬리 리뷰 출판국>은 미국의 기존 출판계가 기피하거나 외면하는 좌파 지식인들의 역저들을 쏟아낸다.


폴 스위지가 주도한 <먼슬리 리뷰 출판국>은 마르크스주의 고전들에 속하는 로자 룩셈부르크, 니콜라이 부하린, 칼 코르쉬 등의 저서들을 번역 출간하는 한편 안드레 군더 프랑크(Andre Gunder Frank)의 <자본주의와 라틴 아메리카의 저개발(Capitalism and Underdevelopment in Latin America) 1967>, 체 게바라(Che Guevara)의 <쿠바 혁명전쟁 회고록(Reminiscences of the Cuban Revolutionary War) 1968>, 에른스트 만델(Ernest Mandel)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이론(Marxist Economic Theory) 1970>, 루이 알뛰저(Louis Althusser)의 <레닌과 철학(Lenin and Philosophy) 1971>, 에드아르도 갈레노(Eduardo Galeano)의 <라틴 아메리카의 절개된 정맥(Open Veins of Latin America) 1973>, 사미르 아민(Samir Amin)의 <세계적 수준의 자본축적론(Accumulation on a World Scale)1974>, 헐 드레이퍼(Hal Draper)의 <칼 마르크스의 혁명 이론(Karl Marx’s Theory of Revolution) 1976-1990>, E. P. 톰슨 (E.P.Thompson)의 <이론의 빈곤(The Poverty of Theory) 1978>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 책들은 폴 스위지가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던 60년대에서 70년대 후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나온 것들로서 <먼슬리 리뷰>가 세계적 좌파 운동의 출판 근거지로 자리매김을 하는 데 결정적인 작업들이 된다. 이후에도 <먼슬리 리뷰 출판국>의 출판활동은 매우 적극적인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1990년대 초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에 의한 소강기를 잠시 지나 오늘날까지 손꼽기 어려울 정도로 중요한 저작들을 출간함으로써 좌파 이론의 지적 재고를 충실히 축적해가고 있다. <먼슬리 리뷰>가 매년 발간하는 <사회주의 기록부 (Socialist Register)>는 미국 좌파 진영의 이론적 집결처의 구실을 하고 있는데 금년의 경우, 제국주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함으로써 폴 스위지와 해리 매그도프가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문제들에 대한 보다 심화된 논의를 담았다.

자본주의 대본영에서 자본주의 비판과 대안의 지속적인 모색

돌이켜 보면, 폴 스위지의 존재는 이렇게 좌파 운동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던 미국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야만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저항과 대안의 모색을 이어오게 하는 데 실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우리의 경우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현실적 가치를 유행처럼 좇다가 냉전지형의 세계적 변화 앞에서 초개처럼 버리고 만 지난 시기와 크게 대조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다니엘 벤자이드(Daniel Bensaid)가 명확하게 주목했던 것처럼 칼 마르크스의 현대적 의미는 스탈린주의의 허상에서 자유로워진 사회주의 논쟁의 현실에서 더욱 진정성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을 우리 지식인 사회에서는 간과하고 있는 듯 하다.

미국 사회에서 대중에 대한 좌파 진영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은 약하지만 지식인 사회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마르크스의 적극적 복권과 아메리카 제국주의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논쟁은 폴 스위지와 같은 독립적 좌파 운동의 선구자들이 터를 닦은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이 주목할 일이다. 좌파는 아니나 진보적 정치학자 찰머스 존슨(Charlmers Johnson)이 최근 내놓은 <제국의 슬픔(The Sorrows of Empire)>,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의 <신제국주의 (The New Imperialism)> 등등의 역작들은 모두 오늘날 미국 자본주의체제가 드러내고 있는 모순과 역사적 한계, 그리고 그 위기적 징후에 대한 분석이라는 점에서 미국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영구적 신념에 도전했던 폴 스위지 등과 같은 좌파 지식인들의 노력에 그 맥을 대고 있다고 하겠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자본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후쿠야마류의 반동적 헤겔주의에 빠진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소수 특권계급의 이윤과 권력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봉사할 체제를 모색하려는 노력은 결코 낡은 것이 아니다. 역사적 상상력과 실천의지를 통해 인간에게 자유와 해방의 권리를 부여하려는 지난한 투쟁은 그 시대마다의 모순과 마주하면서 언제나 새로운 울림을 갖게 되어 있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에 매몰된 러시아 혁명의 현실에 대한 비판을 통해 미국에서 트로츠키 운동을 주도했으며 마르크스주의의 내면에 존재하는 보편적 인간애를 강조한 라야 두나예브카야(Raya Dunayevskaya 1910-1987)는 “마르크스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해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갈파한 바가 있다. 폴 스위지는 그러한 점에서 바로 이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적 목적에 최선을 다해 충실하려 했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폴 바란이 늘 주장했듯이, 시대를 장기적 관점에서 조명하면서 현실에서 은폐되고 있는 모순들을 정직하게 드러내고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최대한 확보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지치지 않고 추구해왔다.

좌파진영의 비판과 대안 제시 투쟁은 완전한 인간해방의 날까지 결코 낡은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빈부의 격차로 더욱 심화되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와 이에 따른 빈곤의 절망적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있는 대중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와 함께, 냉전의 이념적 유산이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으며 거대한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민족적 처지에 대한 패배주의가 내면화되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 폴 스위지와 같은 지식인의 노력과 헌신, 그리고 굴하지 않은 용기와 실천은 진지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세계 자본주의의 핵심적 대본영인 미국에서 미국 자신의 진로와 미래를 향해 치열한 비판적 육성을 쏟아내었다는 것은, 오늘날 반미, 친미 수준의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본격적인 비판과 대안의 모색에 진전이 없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도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미국 사회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좌파진영의 역사는 각자의 이념적 지향과는 별도로 보편적 교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로, 좌파에 대한 여전한 이념적 매도와 마르크스주의를 이미 낡은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야만적인 지적 현실이 우리 사회의 역사적 발전을 얼마나 심대하게 가로막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폴 스위지는 미국사회의 우파적 기득권에 저항하여 좌파진영의 섬세하고도 구체적인 이론적 대안 제시에 주력했다는 점에서 그 공헌한 바가 적지 않다.

진보진영의 사회적 발언이 때로 낡은 이념과 비현실적 이상주의라는 매도 속에서 냉소의 대상이 되기조차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폴 스위지의 반세기 이상에 걸친 지적 충실성과 역사적 용기, 실천적 의지는 소중하게 다가온다. 기만과 억압, 착취와 폭력이 보다 다양하고 교활한 형태로 유지, 진행되고 있는 이 시대에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한 투쟁은 결코 시대착오적인 과거형이 아니다. 그것을 낡았다고 규정하는 지배세력의 주장이야말로 너무나도 오랫동안 되풀이 되어온 낡은 것이다.

폴 스위지가 평생을 통해 의연하게 실천해왔듯이, 이 구태의연한 자본주의 권력의 발언과 논리, 강제력에 맞서서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고 해방의 동력을 발견하여 이를 우리 모두의 권리로 삼아나가는 노력은 역사를 진전시켜나갈 것이다. 이 땅의 진보세력은 현실적 조건의 제약 앞에서 후퇴함이 없이, 자신의 역사적 전망과 정치적 용기, 그리고 대중적 확신을 뿌리내리는 일에 “비둘기 같은 순결함과 뱀 같은 지혜”로 시대가 부과한 책임을 다할 일이다. 역사는 그에 대하여 “유형, 무형의 진보(進步)”로 반드시 대답해줄 것이다.

미국에서 그간 무수한 좌파 진영의 매체가 명멸을 거듭해온 가운데 50년 이상의 역사를 지속시켜온 <먼슬리 리뷰>, 그리고 그 창간자 폴 스위지의 삶과 그 궤적은 시대의 진보적 대의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소중한 용기와 격려가 될 것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지식인은 한 시대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폴 스위지의 유산은 인류적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삼가 그의 명복을 빈다.



김민웅, 프레시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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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담아 갑니다(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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