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MP3가 사라져 주기를 바라기 전에

[from ZDnet : http://www.zdnet.co.kr/news/column/goodhyun/0,39026073,39133322,00.htm]


[김국현의 낭만IT] MP3가 사라져 주기를 바라기 전에

김국현 (IT 평론가)
2005/01/27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신곡을 행여 DJ의 멘트라도 섞일까 조심스레 카세트에 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그 곡이 마음에 들면 다른 넘버들을 듣기 위해 앨범을 사러 레코드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 마음에 들면 친구를 위해 곡을 고이 편집해 건넸다. 그나마 더블데크 카세트를 가진 이들의 사치였다.


그러나 이 복고적 풍경은 사실 방송, 음반, 프로듀싱, 연예기획이라는 한솥밥 업계가 설정한 통제의 회로다. 밀리언 셀러가 양산되고, 업계는 이 회로가 재생산해내는 부를 향유했다. 기술은 이 회로를 뒷받침했고, 그 기술을 제어할 수 있었다. 카세트와 CD라는 완성된 기술은 문화에 충성을 다 했다. 더블데크라는 소박한 복제술은 애교일 뿐이었고, 길보드 카세트는 오히려 홍보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 태평성대의 이면에서, 하수인이던 기술이 숨 가쁜 쿠데타를 일으키고 있음을 예측한 이는 많지 않았다.


맞닿은 이들에게 있어 갈등이란 언젠가는 일어 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충돌이 일어난다. 신문의 정치, 경제, 사회면을 장식하는 이슈들이란 결국 충돌에 대한 것이다. 충돌이란 피할 수 없는 일상이다. 문화와 기술의 충돌은 근래에 우리가 목격한 가장 충격적이고도, 한편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는 충돌이다.


음악과 영화로 대표되는 문화가 IT와 충돌한 것이다. 이용의 대상일 줄만 알았던 기술이 어느새 문화의 적용 방식마저 바꾸려 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충돌이 어디 있으랴. 세상을 바꾸어 버리겠다는 IT의 파죽지세는 사회 곳곳을 파고들어 적잖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바, 문화라고 예외일 리 없었던 것. P2P에 MP3에 DivX에, IT는 문화의 구조를 송두리째 위협하고 있다.


지금은 라디오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검색어 몇 마디면 고음질의 MP3가 하드디스크에 떨어져 내려온다. 곡이 마음에 들면 메신저 상의 여러 명의 친구들에게 가볍게 건넨다. 행동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문화 생활은 분명 편해졌다. 그러나 이 편리함의 비결이 당혹스럽다. 톨게이트가 걷히니 편리해진 것이다. 가치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즉 돈이 오가지 않기에 편리하다. 문화계에 있어 이는 충돌의 수준을 넘어 침공에 가깝다.


이미 CD 따위 거추장스럽다는 이들이 많다. 손가락만한 MP3 플레이어를 지닌 판국에 주머니에 들어가지도 않는 CD는 귀찮기만 할 뿐이다. 곧 카세트 테이프의 실물을 본적이 없는 세대가 출현 할 것이다. 기술의 진보란 거스를 수 없다. 음반 구입비는 어느새 통신비과 얼리어답터 활동비로 대체된다.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해 온 무언가가, 더 이상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이 되었을 때 누구든 공황에 빠진다. 그 반응으로 법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순진하다. 한창 시끄러운 저작권법 개정은 그러한 울부짖음이다. 제발 적당히 좀 해달라는 것이다. 이는 법의 확성기를 빌린 호소이다. 기술에 의해 충돌 당한 문화의 아우성인 것이다.


그러나 IT가 알아서 꼬리를 내려 주기를 바랬다면, 이는 안이한 착각이다. MP3나 오그보비스 따위 사라져 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겠지만, 다시 예전처럼 CD를 군말 없이 사주기를 바라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기 싫어서가 아니다. IT도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계와 음악계는 IT를 탓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IT야 말로 불법 복제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콘프레이크를 팔 듯 소프트웨어를 박스에 담아 파는 일은 완패했다. 남의 일이라 안타까워하던 그 덫에 이제 문화가 걸려 든 것이다. 소프트웨어라는 개념에 돈을 지불하는 습관을 배우지 못한 우리가 과연 문화라는 개념에 다른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IT는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는 만들어지고 있고, 수익을 내는 기업은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세태를 탓하며 사그라지는 기업이 있는 반면, 화려하게 등장하여 우리를 탄복하게 만드는 신성들도 있다. 그들은 게임 패키지가 팔리지 않자, 온라인 게임을 만들었다. 그들은 불법 복제가 성행하니 구독형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들은 새로운 신천지를 찾아 휴대폰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잃고 무언가를 찾았다. 서서히 충돌의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IT는 많은 업계와 좌충우돌하며 그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IT는 언론과 충돌하였다. 종이 신문은 위태로워 졌지만, 누군가는 블로그로 미디어의 대중화를 이루어 내고 있다. IT는 출판과 충돌하였다. 이제 우리는 사전과 편람을 뒤지는 대신 검색어를 입력한다. IT는 상업과 충돌하였다. 수많은 중간거래상은 인터넷쇼핑에 의해 직거래로 대체되었다.

충돌은 무너지며 기회를 만든다. 누군가는 쇠하고 누군가는 흥한다. 충돌의 먼지 속에서도 누군가는 어딘가에 빨대를 꽂아 수익을 빨아들이고 있다.


누군가가 CD가 팔리지 않는다며 네티즌을 증오하는 동안, 애플은 아이포드와 아이튠스로 돈을 버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누군가는 DVD가 팔리지 않는다며 DivX를 씹어대는 동안, 액션 피겨를 동봉한 DVD들은 계속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는 이가 있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이가 있다.


현대의 IT는 “자기가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취한다”는 명제를 불멸의 테마로 삼고 있다. 효율화와 최적화를 도그마로 삼는 업계답다. 문화는 IT와 충돌한 이상, 이전으로의 회귀는 아쉽게도 불가능하다. MP3를 들고 다닌 이래 CD플레이어는 서랍 속으로 들어가 버린 지 오래다. 이 사태에 탓이 있다면 그것은 IT의 본질이지, 특정 기술이 아니다.


시스템이 제시한 틀에 안분지족하던 상인이 자신이 지불한 만큼의 가치를 정확히 받고 싶어 하는 영특해진 고객들을 상대하기 벅찬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법의 힘을 빌어 섣불리 대중을 길들이려 한다거나, 교화시키려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소비자와 등지고 흥할 수 있는 산업은 그리 많지 않다. 한 때 음반업계는 냅스터를 붕괴시키고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밟으면 밟을수록 다시 피어나는 수많은 P2P들이 그들을 맞았다. IT가 와레즈에 대해 느꼈던 그 무력감을 이제 겨우 문화계는 느끼기 시작한 것뿐이다.


기술은 문화의 적이 아니다. 문화 제작의 시스템화는 콘텐츠의 양산 능력을 가속시킨다. 케이크워크, 큐베이스, 로직 등이 현대 음악에 미친 영향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화 ‘월드 오브 투모로우’나 ‘인크레더블’은 문화이기에 앞서 오히려 IT의 하나의 응용예로 여겨질 정도이다. 그러나 아무리 음향에서 어쿠스틱이 증발되고, 스크린에 CG가 난무해도 이를 두고 통곡하지는 않는다. 시대가 그럴 뿐이다. 기득권을 배제한 채 24시간 돌아가는 P2P에 좌절할 이유도 없다. 시대가 그럴 뿐이다.

그리고 어느 시대에도,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는 이가 있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이가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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