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17년간의 기억..고마웠습니다

술집에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제 가슴엔 이미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함께 술을 마셨던 후배는,선배는 오늘 기억속의 그림 하나를 내려놓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한 시절 우리의 마스코트였습니다.


87,88년 언저리, 신림동 그 언덕배기 캠퍼스의 3동과 4동,5동 근처를 오갔던 남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그 모습을 기억할 것입니다. 주먹만한 얼굴에 콧날이 오똑하고 눈빛이 깊었던,단아한 체구의 20살 정은임은 정말 프랑스 여배우 같았습니다. 저는 그녀가 지금 이 곳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발랄하면서도 우아한,그 묘한 마스크만으로 그녀가 우리의 마스코트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간혹 대학본부 앞에서 개최되는 학생회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런 날이면 눈이 부셨습니다. 그리 자주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받은 데는 다른 요인이 작용했음을 부인하지 못하겠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그녀는 사회과학 서적을 열심히 읽는다고 했습니다. 학회활동도 적극적이라고 했구요.그러나 운동하는 선배들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따끔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 해 6월, 그 뜨거웠던 거리에서 그녀의 모습을 본 듯도 합니다.



자신을 둘러싼 이 땅의 현실에 무척 많이 마음아파했지만 정은임은 이른바 운동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엔 고민이 지나치게 많고 버려야 할 게 너무 많은 스타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예쁜 여자 아이가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한다는 사실에,한없이 우중충했던 저와 제 친구들은 조금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운동의 대의..이성적 사고,,뭐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말이긴 합니다만 , 그 때 우리는 세상 무엇과도 연애할 수 있을 듯 하던 20살이었습니다. 88년 여름,우리는 판문점 남북 학생 회담을 요구하면서 문산행 기차를 탔습니다. 역 출구를 지키던 경찰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은이는 무조건 잡아갔습니다. 정은임은 그때 파주 경찰서인가로 연행됐습니다.대학생같아 보이지 않은 덕분에 거의 혼자 무사히 역을 빠져나왔던 저는 왜 나를 잡아가지 않았는지 경찰을 원망했습니다.경찰에 붙잡혔다가 풀려나온 학생들을 환영하는 집회에 참석한 정은임은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습니다.구호를 외치기 위해 뻗어올리는 팔은 너무나 가늘어 보여 조금 어색했습니다. 그 뒤로도 우리는 교정 곳곳에서 스쳐 지나갔을테고 3-4번에 한번쯤은 낯이 익다는 이유로 가벼운 목례를 나누기도 했겠지만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대학 시절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그때의 그 발갛게 상기된 정은임입니다.



군대를 갔다왔더니 이미 학교를 떠난 그녀는 TV에서 날씨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TV에 비친 그녀는 똑부러져 보였습니다. ?f모를 고백이 횡행하고 후일담 문학이 번성하던 90년대 초반,이 대책없는 변화의 시대에 잘 어울리는 변신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그러나 제 안도감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그녀는 적응능력이 그다지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던가 봅니다. 남들보다 1년은 더 오래다닌 대학을 졸업하고 얻었던 직장은 적지않은 보수를 제공하는 대신 툭하면 밤늦게까지 사람을 부려먹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 제 승용차 안에서 그녀의 방송을 들었습니다. 정은임에게 화를 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20살 시절의 이상따윈 어느 새 내팽겨쳐 버리고 통과의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도의 고통을 겪으며, 경쟁 기계로 우리가 길들여져 가던 그 시간,정은임은 비주류였습니다. 심지어 비주류를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겐 그것이 문제였습니다.그녀는 자신의 ??은 시절에 대해 책임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그녀를 마스코틀 떠받들었던 저와 제 친구들은 이미 잊어버린, 그 ??은 시절에 대해서 말입니다. 저에겐 그 모든 게 느닷없게 여겨졌습니다. 정은임은 부하의 배신을 모르는 미련하고 답답한 대장이었고,뒤늦은 강경파였습니다. 그것이 저를 불편하게 했고 그래서 화가 났습니다.



“당신 뭐야?..왜 이러는 거야?우릴 혼내는 거야? 더한 놈들도 많았잖어..당신 그렇게 잘났어?”
들었다면 터무니없었을 분노를 저는 그녀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줄곧 정은임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그렇게 그녀의 소식에 연연했는지,참 알지 못할 일입니다. 신문 한귀퉁이에 정은임과 정영음에 대한 기사가 실리기라도 한다면 유별난 관심을 보였고 그녀를 사랑하는 극성 팬들이 많다는 뉴스엔 대놓고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뜻과는 상관없이 방송은 막을 내렸고 그녀는 이제 어디서도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것이 또 저를,우리를 화나게 했습니다. 좀 더 화려해도 좋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게 전부 그녀탓만은 아니었겠지만요. 우리는 술자리에서, 그다지 잘 나가지 못하는 그녀를 욕하고 또 보고 싶어했습니다.그러다가 사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신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하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녀는 20살 우리들의 마스코트였습니다. 그리고 30살 가까워질 무렵부턴, 잊을 만 하면 듣기 싫은 잔소리를 늘어놓는 우리들의 철부지 친구였습니다. 우리는 그녀에게 화가 났지만 미워하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이 아직도 지켜야 할 뭔가를 간직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정은임과 같은 이들의 공도 적지 않다고 언젠가부터 생각했습니다. 화나면서 닯는다는 말이 있죠?이제 보니 당신, 참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저를 들뜨게 했던 그녀,저를 화나게 했던 그녀..
그래서 우리의 20대를 그저 ??은 날의 치기로만 내버려둬선 안되겠다고 다짐하게 했던 그녀..
정은임을 떠나보냈습니다.
눈부시도록 푸르렀던 ??은 시절을 지켜봐왔던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17년간에 걸친 기억을 짧은 글에 담습니다.
취하고 싶지만 취할 것 같지 않은 밤입니다.



*뒤늦게 카페에 가입하고 늦게나마 써놓았던 글을 올립니다.*

[From 정은임을 사랑하는 사람들,나비처럼님]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스물셋, 가장 빛나던 시절을 만을 기억에 남기고 떠나간 리버 피닉스처럼


당신은 당신의 목소리와,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통해,언제나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네요.


스무살 ‘햇빛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을 함께 보냈던 기억을


대학시절, 치기어린 흔들림과 그 우울과, 아릿한 기억을


당신과 함께 기억할 수 있게해줘서 고마워요


고마워요



당신이 떠나던 날처럼 오늘도 비가 옵니다.


어쩌면, 비오는 날.. 싫어질지도 모르겠네요.





정은임의 영화음악 ‘파업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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