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해피엔딩을 믿지 않는 드라마시대가 열리다.


[from magazineT]


해피엔딩을 믿지 않는 드라마시대가 열리다.


실전화기는 두 사람이 팽팽하게 실을 잡아당겨야 대화할 수 있다. SBS <연애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산다. 동진(감우성)과 은호(손예진)는 부부도, 연인도, 친구도 아니지만 던킨 도너츠에서, 술집에서 쉼 없이 부딪치며 서로를 일정한 거리 안에 둔다.


가까우면 헐렁하고 멀면 끊어지는 딜레마


















동진과 은호에게 결혼을 전제로 빠르게 다가온 미연(오윤아)과 현중(이진욱)은 결국 그들 곁을 떠나고, 동진에게 고백조차 못한 유리(하재숙)는 동진의 친구로만 남는다. 실전화기의 실처럼, 그들은 서로의 손에 빨간 실을 묶고 ‘팽팽한’ 거리를 유지한다. 가까워지면 헐렁하고, 멀어지면 끊어진다. 그들은 서로를 언제나 만날 수 있지만, 서로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진 못한다. 동진의 말처럼, 그들은 떨어져 있기 때문에 편하게 볼 수 있다. 빨간 실을 감아 서로의 손을 맞잡기엔 그들은 너무나 완결된 개인의 삶을 산다.
혼자 살 수 있는 집, 먹고살 만한 직장, 부유하진 않으나 마음 내키면 그럴듯한 식당에서 내 곁에 있는 그들과 언제나 웃고 떠들 수 있는, 30대 초중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넘어가는 시절의 그 몇 년 동안 누릴 수 있는 어떤 삶의 모습. 물론, 가족은 가지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가지지 못했기에 애틋한 존재일 뿐 함께 살면 서로에게 어떤 상처를 줄지 알 수 없다. 은호가 수영장의 아이를 보며 애틋한 표정을 짓고, 동진이 은솔(진지희)에게 잘 대해줄 수 있는 건 그런 가족의 모습이 그들의 삶에서는 어느 정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가족을 만들었다가 다시 동진과 은호 사이, 은호와 그의 아버지(김갑수) 사이의 일이 반복되면 어쩌나. 내가 가족을 안으며 느끼는 따뜻한 친밀감에 대한 상실과 가족이기에 견뎌야 하는 상처 사이의 딜레마.


치명적인 ‘사랑’ 대신 연애만



















그렇기에, <연애시대>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좀처럼 쓰이지 않는다. 포기할 수 없는 것들, 두려운 것들이 너무 많은 그들에게 사랑은 너무 치명적인 단어다. 그들은 늘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연애’를 할 뿐이다. 그들에게 연애란, 사람을 사랑하고 결혼하게 만드는 과정의 첫 단계가 아니라 혼자 불을 끄고 잠드는 사람들의 휑한 마음을 채워주는 끊임없는 설렘의 공급이다. <연애시대>는 바로 그 설렘의 순간을 잡아내며 차분한 일상에 다가온 벅찬 순간의 감정을 보여준다.
동진이 첫 만남 뒤 집으로 가려는 유경에게 “지금은 책상에 손을(손에 든 편지를) 넣어야 할 때”라며 유경에게 첫 데이트 신청을 할 때, 윤수(서태화)가 어려움을 무릅쓰고 은호에게 어색한 고백을 할 때 같은 것들. 망설임을 이겨내고 애써 손을 내밀었을 때의 설렘, 그리고 그것이 받아들여졌을 때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감정의 파고는 그들이 집으로 돌아온 순간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 지르게 하고, 그것은 그와 같은 경험을 했던 시청자들에게도 같은 감정을 일으킨다. 내가 저렇게 다가섰을 때, 거절당했을 때, 누군가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을 때에 대한 기억들과 그때 느낀 나의 감정의 디테일을 <연애시대>는 작은 핀셋으로 하나씩 집어낸다.


엔딩이 아니라 선택의 순간을 맞다


그러나, 설렘과 투정이 반복되는 연애시대는 언젠가는 반드시 종료된다. 누군가와 함께 하거나, 혼자 남겨진 40대 독신이 되거나. 좋은 시절은 끝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떠나면 내가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 동진이 유경과 결혼한 뒤 은호가 보여주는 혼란은 단지 누군가에 대한 상실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대한 후회와 분노다. 나는 왜 함께 불을 끄고 잘 단 한 사람조차 없는 걸까. 가족을 만드는 것이 두려웠기에 그 한발을 나가지 못한 은호는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사람을 놓친다.
그래서 <연애시대>는 그들에게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만이라도 한 발 더 나아가라고 말한다. 그것이 동진처럼 변명마저 할 수 없는 순간이라도, 은호의 아버지의 말처럼 두렵고 후회된다 해도 솔직해져야 할 때가 있다. 그때의 상처를 견뎌내고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의 손을 잡았을 때, 그들은 연애시대를 끝내고 ‘가족의 탄생’을 맞이한다. 깨끗하고 안정된 연애시대를 넘어 후회하지 않기 위해 눈물 흘리는 그 선택의 순간을 넘어설 때, 그들은 다시 한 고비를 넘겨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다.
연애의 끝에 기다리는 것이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이 아니다. 기다리는 건 다만 좀 더 나이든 그들의 다음 시대일 뿐이다. 우리는 언젠가 열심히 연애하던 이 시대를 끝내고 그 시대를 위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연애시대>는 멜로드라마이기 이전에 30대를 위한 성장 드라마다. 부모와 따로 사는 게 점차 일반화돼가고, 연애가 일상이 되기 시작되던 시절, 그 때 X세대라는 이름을 달고 신세대였던 그들은 <네 멋대로 해라>를 통해 젊은 시절 그토록 동경했던 ‘따뜻하지만 쿨한’ 감성을 받았고, <연애시대>로부터 지금껏 드라마가 발견하지 못했던 20대 후반으로부터 30대에 이르는 도시남녀의 감성과, 그들이 치러야 할 어른들의 성장통을 보여준다.


드라마 보지 않던 30대 남성을 사로잡다










왜 그들은 20대처럼 솔직하지도, 40대처럼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까. <연애시대>는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스토리를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일상의 한 부분을 통해 ‘알 만큼 아는’ 그들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헤어지면서 연애가 시작된 동진과 은호의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이미 대부분 한 번쯤은 연애의 모든 과정을 겪고 헤어져봤을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만큼 <연애시대>는 도시의 20~30대를 제외한 시청자층에게 큰 호응을 얻기 힘든 대중적인 한계가 있지만, 드라마가 특정 세대의 일상을 파고들면서 그들의 생활 같은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 드라마의 주 시청자층 중 하나가 가장 드라마를 보지 않는 수도권 30대 남성들이었다는 사실은 <연애시대>가 남긴 또 다른 성과일 것이다. 차를 몰고 다니느라 거리를 오랫동안 걸어본 게 언제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고, 연애란 연애는 다 해본 것 같아 더 넓은 집과 예쁜 가구, 혹은 태어날 아이에 대한 기대가 모든 것일 수도 있는 나이. 그러나 그들에게도 아직 성장해야 할 마음과, 같이 보고 즐거워할 드라마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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