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태극기 휘날리며’는 분명 문제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 영화의 진정한 추락이다”

‘한국 영화’에 관한 ‘사대주의’적 주례사비평글에 구역질을 느끼며

[태극기 휘날리며]는 조금도 헷갈림을 주지 않는다. 조금의 헷갈림을 주지 않는 ‘수정주의’역사관의 영화다. ‘수정주의’역사학이 친북좌파의 역사관에 가깝다고 볼 때, [태극기 휘날리며]가 관객을 많이 모일 수록 몇 십만 단위의 좌파 시위의 연속이란 효과를 준다고 보면 맞다.

대학생층과 청소년층은 못 알아듣는다. 간단하게, 위에서 표현한 정보는 <전통주의 역사학>과 <수정주의 역사학>의 차이, 그리고 전통적 역사학과 민중사학의 차이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실존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생들에게는 1년에 4-5권을 읽는 사람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전문 연구자들에서도 제한적으로 완벽하게 알아들을 발언을 쉽게 검증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사회의 모든 권위가 무너져서, 전문가의 발언도 불신한다.

영화평에서 긍정적인 비평의 형식은 이러하다.

1) [태극기 휘날리며]는 ‘인간’을 그렸다고 그랬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강철 김영환이 썼던 ‘인간’의미와 같다. 즉, ‘학생운동권=인간’이란 선입견이다. 영화에서 ‘장동건’과 ‘원빈’의 판단은, 2004년 학생운동권의 판단이며 역사적 과거의 인물의 그것이 아니다. “미쳤어”라는 대사는, 그 시대를 연구해본 전문가들에겐 그 시대에는 불가능한 발언임을 알 수 있다.

2) [태극기 휘날리며]는 [라이언일병구하기]나 기타 전쟁 영화를 능가했다고 한다. 이러한 영화평은 ‘인간’어쩌고 할 수 있는 표현은 세뇌된 주체에서 가능한 중얼거림이었단 사실을 확인해 준다.

영화는 돈을 투자해서 돈을 버는 사업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투자자 수준에서 ‘친북좌경’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고 옹호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감독이 제 정신이 아니고 좌파 역사학자가 협력되었다 하더라도 투자자만 제 정신을 가졌다면, 이 영화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영화는 돈을 투자해서 돈을 버는 사업이다. 돈을 쓴 만큼 화면이 예쁘게 나온다. 예를 들어보자. 멀리서 한 화면으로 찍는 상황 묘사 장면이 영화에서 잘 안 나오는 데, [태극기 휘날리며]는 숱하게 이 방식이다. 엑스트라 1명에 어림잡아 5-7만원은 주었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이 정도로 화면에 빼곡하게 채우는 데 얼마가 들었을까? 게다가, 그들에게 입힐 옷은? 돈을 많이 쓰는 영화는 화면이 예쁘게 나올 수 밖에 없다.

영화에서 기술의 발전은 투자자들이 많은 이득을 뜯어먹기 위해서 이전하는 경우가 많다. 헐리웃 영화 를 따라잡았다는 사대주의적 주례사 비평글이 구역질 나는 이유는, 헐리웃에서 전쟁영화 계보에서 미국의 정당성을 깨버리길 좋아하는 것을 선호하는 계보의 활동의 개연성을 미화하는 우려가 있다. 영화에서 ‘특수효과’도 전자 제품의 기술처럼 쉽게 이전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인력’을 스카웃 하면서 그 ‘인력’의 노하우를 베껴 쓰거나, ‘기술 이전’을 전제로 하는 외국자본의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다.

헷갈리지 않는 “(신)수정주의 역사학”적용의 영화이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신)수정주의 역사학”에 대해서 찾아보고, 김동춘씨의 6.25 전쟁관련 책을 뒤져보면, [태극기 휘날리며]의 스토리 구조의 이해는 분명히 들어온다.

이성적인 추론의 차원에서, ‘감독/각본 강제규’인 영화에서 인력 스카웃은 없었을 것으로 본다면, 짜증날만큼 반복되는 몰주체적 사대주의지향적 주례사비평글로 헐리웃영화의 기술을 능가하다는 표현에서는, 헐리웃 영화에서 미국의 애국심을 깨뜨리기 좋아하는 세력의 개입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막연한 ‘국산품 애용’마인드의 연장선에서 칭찬해주기에는, [태극기 휘날리며]는 특수효과에서 고급기술의 이전 이란 문제가 명확하게 보여서, 주저하게 된다.

3) ‘국가’보다 ‘민족’운운하면서 황당한 방향성을 미화하는 언어들이 있다. 이것은 이 영화의 방향성이 헷갈리지 않게, 친북좌파 지향적인 정치 이념속에서만 독해된다는 사실이다.

돈을 많이 쓴 영화는 당연하게 화면이 예쁘게 나온다. 그리고, 특수효과는 고급기술로 쉽게 이전되지 않는 것임에도 그렇게 되었다면,
‘국산품’애용마인드로 쉽게 보아서는 안된다. 국산품애용마인드에 합당하지 않게 분명한 친북좌파 영화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친북좌파적 영화의 파급력을 의도하는 세력에, 영화의 고급기술을 이전해줄 세력의 결합이라고 보면 적절할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 영화의 진정한 추락이다. ‘한국 영화’가 아니라, 단지 ‘한국국적’소유자가 감독한 영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갑제 홈페이지에서.

http://www.chogabje.com/board/board_read.asp?tablename=choboard&idx=3377

“배달의 기수”를 원하는가?

“태극기 휘날리며” 적탄을 맞아쓰러지면서도, 고지를 향해 달려들어, 북괴 공산도배를 총검으로 찔러 죽이는 영웅담을 원했는가?

세상을 좌와 우 심플하게 나누어 경계밖의 가치관들은 모조리 붉게 채색해 버리는 그 순진함에

아득해진다. 민족을 말하는 것이 ‘황당한’ 것이 되고, 인간과 가족을 이야기 하는 것이 수정주의 적 역사관으로 매도되어버린다.

두 눈으로 100%의 세상을 바라보길 포기한 인간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나.

국방군과 인민군의 학살장면을 똑같은 비중으로, 그러나 먼저 인민군의 학살장면을 보여주는 방식으로,영리하게 위태로운 줄타기를 성공시켜낸 강제규의 영화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늙은 편집증 환자에게서 독설을 끌어낼만큼 사회적 현상이 되고 있다.

* to 조갑제 : 무식한 인간아. 자본주의적 투자의 관점에서 인풋이 있으면 고스란히 그만큼의 아웃풋을 기대하는 굳어버린 네 머리에서는 이해가 안될지 몰라도, 영화는 누구의 말처럼 창녀의 자식이라네, 산업이기도 하거니와, 예술이기도 한거야. 그러하기에 40 만원 월급받으면서도 영화판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내 영화 하나 만들겠다며 10여년을 연출부에서 뒹구는 사람들이 있는 거라네. 이양반아,돈을 쳐바른다고 그만큼의 때깔이 나오는 것이 아니야.

2 Comments

  1. 글쎄요?? 저는 감명깊게 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자체로 높은 완성도를 지녔다고 생각하는데..(물론 보는 안목이 낮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영화로 보고 끝내야지 물고 늘어지는 모습은 자기 얼굴에 침뱉기 같군요.. 영화는 영화로서 생각합시다

  2. 블로그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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