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착각하지 말자,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결정됐다. 민주당이 주도하고 한나라당, 자민련이 가담하여 탄핵안 의결에 국회의원 195명이 참여하여 단 2명만 반대했을 뿐, 나머지 모두가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씨를 직무 정지된 ‘식물대통령’으로 만든 이번 탄핵안 통과에 대해서는 여론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시민사회단체들이 탄핵 결정을 ‘다수당의 폭거’, ‘의회쿠데타’라고 격렬히 비난하는 가운데, 국민의 여론도 탄핵은 잘못이라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탄핵안이 의결된 12일 당일, 방송3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탄핵 반대의사를 내비친 사람들이 70%에 이르고, 젊은 층이 주로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 네티즌 여론조사에서는 반대가 80%를 상회할 정도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말도 되지 않은 짓을 저질렀다고 본다는 증거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수구 보수 세력인 한나라당, 자민련, 그리고 민주당이 노무현대통령을 탄핵할 근거가 없다는 데는 나 역시 생각이 같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국정 파탄, 선거법 위반 등의 이유야 탄핵을 위한 야당의 트집잡기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노무현정권이 들어선 뒤 대중의 삶이 더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대통령은 애초의 약속을 저버리고 이라크파병을 추진했고, 초국적 자본의 요구에 굴복하여 교육시장 등 국내시장 개방을 확대했다. 기대와는 달리 환경파괴 정책들을 그대로 진행했고, 특히 노동운동을 탄압함으로써 ‘친노동’의 가면과는 달리 노동자 대중의 여망을 저버렸다. 그래도 분명히 할 것은 분명히 해야 한다. 강도가 도둑을 벌 줄 수는 없는 법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이 노무현 대통령을 응징할 자격은 없다. 5, 6공 군부독재 세력에다 최근에는 차떼기 당으로 전락한 한나라당, 전망 부재로 떨어지는 당 지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까 하여 과거의 적과 결탁한 민주당, 그리고 이 두 당에 슬그머니 힘을 합한 원조 수구세력 자민련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 이전에 비판을 받아야 한다. 탄핵안을 통과시킨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도가 오히려 떨어진 것은 여론이 그들을 심판한 셈일 것이다.

그러나 착각하지는 말자. 탄핵정국에서도 진보세력은 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은 총선을 둘러싼 ‘올인’ 게임이다. 올인 게임은 모두 판돈을 키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야당도 여당도 탄핵을 둘러싼 필사의 승부를 걸고 있다. 싸움이 격렬하면 보는 사람들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싸움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법이다. 지금 일반시민은 물론이고 대중단체, 사회운동 단체의 관심 또한 탄핵정국에 몰려 있다. 12일 이후 여의도와 광화문에 수만 명 규모로 집회를 하는 것이 그 증거다.

착각하지 말자는 것은 지금의 싸움을 친노와 반노의 대결로만 보지는 말자는 것이다. 물론 앞으로 정국은 탄핵 찬성과 반대로 전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으며, 친노와 반노의 대립 구도는 거의 필연이다. 혹자의 말대로 노무현대통령이 오히려 자신의 탄핵을 원한 것이라면 이런 구도를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여론 판세가 이어지면 다가오는 총선에서 노무현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가장 큰 승리자가 될 것이다. 반면에 누가 손해를 볼까? 보수세력인 야3당만은 아닐 것 같다. 지난 며칠 동안 민주노동당 지지도가 2% 가량 떨어졌다는 여론조사결과가 나왔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진보세력이 눈앞의 싸움을 친노와 반노의 대결로만 봐서는 안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친노 대 반노의 대립은 흔히 보수 대 개혁의 대립으로 이해된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개혁세력임을 자임한 효과일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은 탄핵을 받은 직후 경남 진해의 로템사 노동자들에게 “좌절하지 않고 꼭 변화와 개혁을 성공시키겠다”고 했다. 문제는 그가 바라는 개혁이 이뤄지더라도 지금까지 노동자 민중을 짓밟아온 신자유주의 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노무현 식 개혁이 지속하면 시장은 더 많이 개방되고, 공교육은 무너지고, 의료비도 올라가고, 생명의 보고인 새만금 개펄도 더 많이 파괴된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우리는 힘을 키워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보수 대 개혁의 구도에서 보수 대 진보의 구도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진보세력도 광화문에 가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민주와 진보를 위한 변화는 현장에서 생기는데, 지금 가장 중요한 현장은 사람들이 모이는 광화문이다. 거기엔 과연 친노 대 반노의 대결만이 있는 것일까? 언뜻 보면 그렇게 보인다. 다수 시민운동단체들이 친노세력처럼 굴며 탄핵을 규탄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10만 가까운 인파를 꼭 ‘노사모’만이 채웠다고 보면 그야말로 착각일 게다. ‘노사모’ 회원이 많기야 하겠지만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상당한 비율은 다른 세계의 꿈을 안고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진보세력은 광화문에 모인 동지들을 지원할 의무가 있다. 보수 대 개혁의 대결을 보수 대 진보의 대결로 바꾸려면 힘을 합해야 한다.

강내희 (경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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