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우리가 애플을 배워야 하는 이유 (하)

지난번 글에 이어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잠시 살펴 보겠는데, 앞서 열거한 두 가지에 이어 세번째 장점으로 “사람과 조직 문화”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결국 어떤 회사든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한 명에 의해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은 애플의 성공이고, 애플의 성공은 애플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이룩한 결과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피플 & 컬쳐

아이튠스의 성공을 이끌어낸 사람 중의 하나가 제프 로빈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를 “미스터 아이튠스” 라고 부른다.

그는 원래 애플에 있다가 회사를 나가서, MBA를 따고 자신의 회사를 창업한 사람이다. 제프 로빈이 창업한 회사는 사운드스텝 (SoundStep) 이라는 회사로써, 사운드잼 (SoundJam) 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던 중이었다. 사운드잼 소프트웨어는 아직 미완의 대기에 불과했지만 잡스는 제프 로빈의 회사를 사들였다. 가장 큰 이유는 제프 로빈이 애플에 있을 때 뛰어난 인재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13개월 뒤, 제프 로빈은 아이튠스를 만들어 내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괴짜라고 알려져 있고 사람간의 관계가 원만하지만은 않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처럼 필요할 때는 사람을 보고 회사를 살 줄 아는 것도 그가 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인 듯하다.

이처럼 뛰어난 인재를 알아보고 그를 조직으로 이끌어 오는 일도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이겠지만, 그가 조직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절로 들도록 하는 열린 조직문화 역시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애플의 조직 문화는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분명 대부분의 우리나라 회사들보다 훨씬 열려 있고 재미있다.

반바지와 대학노트

필자는 애플 본사에 몇 번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어떤 목적 때문에 갔었는지에 대해서는 비즈니스 컨피덴셜이므로 본고에서 밝히지는 않겠다.

애플과의 미팅은 추진하는 단계에서부터 놀라움을 주었다. 미팅 스케줄에 대해서 실무자와 이야기를 한창 하던 중, 그 실무자가 사안이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던지 “By the way, do you think Steve should be coming to the meeting this time?” 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Steve..who?” 라는, “가장 바보같은 대답”을 하고 말았고 (그 순간에는 정말 스티브가 누굴 말하는 지 잠시 몰랐던 것 같다), 결국 그 “스티브”가 미팅에 오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러한 대화가 오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의 기업 문화에 익숙한 우리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아닐까 한다. 더우기 이쪽편에서 전화를 거는 사람은 한낮 실무자에 불과함에도 말이다.

실리콘 밸리의 비교적 남쪽에 속하는 쿠퍼티노에 소재한 애플 본사는 MS, 시스코, 썬 등의 본사처럼 여러 개 건물의 “캠퍼스” 로 이루어져 있다. 잠시 미팅을 준비하러 근처의 스타벅스에 들렀는데, 거기에는 애플 직원으로 추정되는(?) 젊은 사람들이 파워북을 펼쳐놓고 무언가에 열중한 채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 간혹 눈에 띄었다.

“옷”에 대한 작은 에피소드

예전에 애플 사람들과 IBM 사람들이 서로의 드레스 코드에 맞추어 옷을 입고 나가서, 한바탕 웃음을 자아낸 결과 자연스러운 ice-breaking이 되었다는 에피소드를 들은적이 있는지라, (즉 애플 사람들은 모두 양복을 입고 IBM 사람들은 모두 캐주얼을 입었던 것이다) 일부러 애플의 드레스 코드에 너무 맞추어 캐주얼한 옷을 입고 가는 것도 우스우리라고 생각해서, 필자는 나름대로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었다.

그런데도 생각보다 더 캐주얼한 드레스 코드에 적지 않이 놀랐다. 긴 머리와 대학 노트에 반바지를 끼고 다니는 사람들 – “게임 개발자 패션” 이라 불릴 만한 – 도 꽤 많았다. 만일 한국식으로 드레스업을 했으면 큰일날뻔 했다 싶었다. 혹시라도 미국 서부 실리콘 밸리에 있는 회사와 현지에서 미팅을 가질 예정이라면, 물론 비즈니스 파트너에 따라 사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너무 한국식으로 완전히 드레스업 하지는 않을 것을 추천 드린다. 그렇다고 반바지에 티셔츠도 적절치는 않겠지만.

방문자 센터 (Visitor center) 에는 그때 출시되었던 아이포드 미니 (Mini) 에 대한 홍보 포스터가 거의 월드컵때 애국가가 울릴때 우리 관중들이 들고 있었던 태극기 만한 크기로 천정에 걸려 있었고, 옆 건물에는 애플의 각종 제품을 판매하는 애플 스토어가 자리잡고 있었다. 애플 스토어에서는 애플이 생산하는 각종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제품 외에도 애플 자체의 브랜드에 대한 재미있는 기념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마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역시 브랜드 관리 하나는 철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문서 정리를 안 할까?

필자의 한정된 경험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지만, 애플 사람들과 회의를 하면서 느끼는 점 중의 하나는 다른 일반적인 회사들보다 문서 정리가 의외로 잘 안 되어 있다는 점이다.

보통의 회사들은 회사대 회사간의 공식적인 미팅을 가질 때, 각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부터 제안 내용에 이르기까지 서로 준비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빔 프로젝터로 비추면서 진행을 하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와 회의했던 애플 사람들은, 어떤 사안에 관여된 핵심 멤버들끼리 회의실에 모여서 화이트보드에 열심히 의견을 개진하고, 그걸 통해 결론을 그 자리에서 도출하는 스타일이었다. 도출된 결론이 누군가에 의해 회의록으로 정리되고 회의 참석자들에게 공유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어떤 자료를 요청하면 약간 난감해 하며 “그런 자료는 따로 없고 내 머리속에 다 들어있는데…” 라는 식일 때가 많다.

다만, 회의에서 도출된 결론은 그 회의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의 머리 속에 상당히 또렷하게 박혀 있는데, 그 이유는 모두가 회의에 상당히 액티브하고 강도높게 참여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안에 관계된 사람들은 대부분 회의에 참석한다. 그리고 그 회의를 통해 속된말로 “쫑을 본다.” 그리고 각자의 일을 스피드있게 추진해 나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방식이 무조건 좋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지식의 문서화가 주는 장점은 상당히 많으며, 때때로 글로 씌여진 커뮤니케이션 (written communication) 이 말로만 하는 커뮤니케이션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제 3자에게 지식을 전달해 주려면 문서는 필수적이다. 게다가 문서로 남지 않은 지식은 종업원이 떠나면 회사에 머물 수 없다.

하지만 때로는 보고 자료의 홍수 속에서 실제 일처리가 상당히 지연되는 경우가 많은게 우리 기업들의 현실이다. 더우기 심지어 보고 체계가 몇 단계를 거치는 경우, 각각의 사람들에게 따로따로 보고 자료를 준비하기까지 한다. 이 얼마나 낭비인가.

조직에서 어떤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실제 일을 추진하고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끼리 짧은 시간동안의 회의를 통해서 결론을 도출하고 그대로 추진하는 것이다. 보고자료와 문서작성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보고자료와 문서를 쓰는 시간은 고스란히 실제 일을 하기 위한 시간에서 빼앗겨서 사용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히나 우리나라의 전통적 대기업들은 애플의 스피디한 조직 문화를 조금은 배울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다시한번, 아이튠스는 약 1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개발되었다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Work should be fun

사실 사람 사는 데에 갈등과 반목 없는데가 어디가 있으랴만은, 적어도 몇 가지 자료를 토대로 짐작해 보건대 애플에서 일하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듯하다.

Fortune 과 가진 인터뷰에서, 아이포드와 아이튠스의 성공이 애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잡스는 “일이 더 즐거워졌다” 라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아이튠스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침에 회사가는 시간을 기다리지조차 못할 정도로 자기 일을 즐긴다는 것이다. (“It feels great. We’re having fun. Most of us can’t wait to get to work in the morning.”) 필자가 만났던 애플 사람들 역시 삶에 찌든 표정들은 아니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비즈니스 잡지인 “Fast Company” 의 최근호에서는, 창조성(Creativity)에 대해 회사들이 갖는 가장 큰 오해는 바로 사람들이 절박한 상황에서 보다 창의적이 된다고 믿는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 믿음 때문에 회사들은 사원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이틀 안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거나 밤을 새서라도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며 다그친다.

아마 이렇게 다그치는 분들은 어렸을 때 “맥가이버”를 많이 보신 분들인가보다. 적의 창고에 갇힌 절박한 순간에 기지와 창의력을 발휘해 내곤 하는 맥가이버처럼 (그런데 왜 맥가이버의 적들은 맥가이버를 꼭 창고에 가둘까?), 직원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아이디어가 안 나오는 건 아니겠지만, 사람이 정말로 창의적이 되는 순간은 외부적인 압력이 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가 즐기는 일에 푹 빠져 있을 때다. 그런 면에서 매리엇 호텔이 한때 광고에서 사용했던 캐치프레이즈인 “당신이 편안하다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When you’re comfortable, you can do anything)” 라는 말은 다분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회사 가는 일이 기대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은 재밌어야 한다. “절박한 순간의 창의성”에 너무 큰 기대를 가져선 안 된다.

우리가 애플을 보고 배워야 하는 이유

이상으로 애플을 이끌어 가는 스티브 잡스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 세 가지를 필자의 다분히 주관적인 견해를 토대로 살펴 보았다.

살펴본 세 가지를 다시 정리해 본다면, △자기가 믿는 것에 대해 확고한 고집과 끈질김을 가지고 밀어 붙이되, △무조건 밀어만 붙이는 게 아니라 용의주도하게 뛰어난 전략을 세울 줄도 알아야 하며, 또한 △재미있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글의 제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비록 애플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성공적인 회사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애플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Fortune의 기사 말미에는 스티브 잡스가 프로그래머도, 디자이너도, MBA도 아니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각각의 영역 (즉 소프트웨어, 미적 감각, 기업 경영) 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스티브 잡스는 그러한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르네상스 맨’에 가깝다.

이러한 르네상스 맨 한 사람의 움직임이 애플이라는 큰 회사의 주가를 좌지우지 한다. 잡스가 암 선고를 받고, 수술 후 회복하는 과정에서 애플 주가는 한차례 출렁거렸다. 이를 두고 애플이 아직도 잡스 한 사람에 기대는 회사라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잡스라고 하는 뛰어난 “한 사람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 독자 역시 우리나라 사회가 중시하는 MBA나 박사 타이틀을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혹은 프로그래밍같은 뛰어난 전문가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할 지라도, 독자에게는 충분히 기회가 있다. 당신이 가장 확신을 가진 일에 고집과 끈기를 가지고 매달리고, 뛰어난 전략을 창출해 나가며, 또한 당신을 팬으로 삼고 재미있게 (그러나 창조적으로) 일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갖고 있다면, 당신도 스티브 잡스같은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당신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경탄과 흥분과 기대를 자아내는 회사를 이끌어 가는 르네상스 맨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애플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한 사람의 힘”이 바로 당신을 통해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믿기 위해서다.

One Comment

  1. 다시한번 천천이 읽어봅니다.. 공감가는 부분이 많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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