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우리가 애플을 배워야 하는 이유 (상)

[from Skyveture]

지난 2월 21일자 포천 (Fortune) 잡지에는 애플이 최근에 거두고 있는 성공과 이를 가능케 한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에 대한 또 하나의 기사가 실렸다. 필자가 “또 하나의 기사” 라고 표현한 것에서 짐작했겠지만, 솔직히 요즘 아이튠스와 애플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이 나와서 조금은 식상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번 기사는 적어도 필자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다. 특히 기사의 한쪽 여백에 크게 인용되어 있던, 전(前)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장 네이썬 머볼드 (Nathan Myhrvold) 가 애플 아이튠스 서비스에 대해 언급했던 말이 너무도 의미 심장하게 다가왔던 게 그 한가지 이유였다.

“음악, 비디오 등 멀티미디어 컨텐츠의 이용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를 모두 합친 형태로 발전하게 되면, 전통적 의미의 전자제품 회사들은 거의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온 것만큼이나 큰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Once audio and visual experiences become a combined hardware-software-network thing, the consumer electronics guys are fish our of water.”)

쉽게 말하자면 애플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바로 그 트렌드로 인해서 소니나 삼성같은 거대 가전 회사들은 긴장해야 된다는 소리다.

위의 문장은 필자도 잠시동안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위의 문장이 시사하는 트렌드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를 현재 먹여살리고 있는 회사들이 바로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전자 회사들”이 아니던가? (심지어 어떤 전자 회사의 경우에는 필자도 먹여 살리고 있는 중이다.)

애플: 과연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회사인가?

그만큼 애플의 아이튠스와 아이포드 비즈니스는 하나의 흥미로운 사회적 관심거리 (Fad) 를 넘어서, 어떤 트렌드를 시사해줄 정도로 무시못하게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번 글에서 언급했지만 아이튠스 서비스는 일 130만건 다운로드를 기록중이고, 아이포드 단말기는 작년 4/4분기에만 460만대가 팔렸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이포드가 뭐 아무리 많이 팔려봤자 고작 MP3 단말기 아닌가? 그리고 살만한 사람들은 왠만큼 다 하나씩 샀을 텐데…” 하지만 생각을 달리 해서, 다음과 같은 점을 감안해 볼 필요가 있다. 애플이 이제 아이포드 단말기를 천만대 남짓 판 반면에, 소니의 워크맨은 총 3억 4천만대가 팔렸다. 미국의 젊은 직장인들은 예전처럼 자기 아파트를 꾸밀 때 소니 스테레오 세트를 사지 않고, 대신 아이포드와 BOSE 스피커 시스템을 산다.

서비스 쪽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가장 음악 온라인 다운로드가 활성화된 미국 시장에서조차 다운로드를 통한 음원 판매는 전체 음반 시장 대비 2%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앞으로 이 시장이 커진다면 현재 60~7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튠스 음악 다운로드 서비스의 규모 역시 덩달아 커질 확률이 높다. 아이튠스 서비스의 성공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애플의 하드웨어 (매킨토시 컴퓨터 등) 및 소프트웨어 비즈니스 (OS X, iLife 등) 역시 전에 없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비즈니스가 순항하더라도 애플은 여전히 그렇게 큰 회사는 아니지 않은가? 애플의 2005년 매출 목표는 130억불, 즉 우리 돈으로 약 12~13조 수준이다. 이는 소니나 삼성전자의 매출 규모인 약 50~60조원에 비교해 보면 20~30% 밖에 안 된다. 삼성전자의 순익이 10조대임을 감안하면 애플의 총 매출은 삼성전자의 순익 정도 규모인 것이다. 적어도 규모 면에서 보면 애플은 소니나 삼성의 당장의 적수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애플을 주의깊게 보고 배워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포천 잡지의 글이 그 해답을 주고 있다.

한 사람의 힘

기사는 애플이라는 회사 만큼이나 그 회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 애플이라는 꺼져가던 회사를 다시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아이튠스라는 새로운 미디어 트렌드를 탄생시킨 게 다 스티브 잡스라는 뛰어난 리더의 공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에 얽힌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나열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의 어떤 면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기사의 내용과 그간 알고 있던 지식을 토대로 잡스의 성공 요인을 필자 나름대로 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고집과 끈질김이다. 스티브 잡스는 어떤 한가지 테마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애플이라는 회사를 이끌어 나가면서 스티브 잡스가 고집스럽게도 초점을 맞추는 분야는, 하이테크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고객이 포장된 박스를 여는 순간 제품의 직관적이고도 아름다운 모습에 경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애플의 핵심 역량은 바로 이러한 “놀랍고도 (surprise) 기쁜 (delight)” 고객 경험의 창출이라고 스스로 이야기하고 있다. (“Apple’s core strength is to bring very high technology to mere mortals in a way that surprises and delights them.”)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때로 비판을 받아 가면서까지 이러한 고객 경험의 창출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렇게 하는건 쉬운 일 같아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항상 기업가에게는 “현재 우리 회사의 체질에 그다지 맞진 않지만 더 좋아보이는” 기회들이 눈에 보일 테고, 이를 떨쳐버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긴, 스티브 잡스는 청바지에 운동화, 짙은색 터틀넥이라는 패션 코드까지도 수십년을 고집할 정도로, 원래부터 고집이 센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스티브 잡스가 한가지에 집착하는 외곬수라면 왜 픽사 (Pixar) 라는, 애플과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애니메이션 영화 회사의 CEO 까지 겸하고 있는지를 물어볼 지도 모르겠다. 아마 픽사의 연봉까지 받으려는 돈 욕심은 분명히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 본인의 변명(?)은 무엇일까? 그는 실은 픽사와 애플이 완전히 관계없는 회사는 아니라고 항명(?) 하면서, 다음의 한 마디를 제시한다. “픽사는 가장 기술력이 뛰어난 창의적 회사이고, 애플은 가장 창의성이 뛰어난 기술 회사이다.” (“Pixar is the most technically advanced creative company; Apple is the most creatively advanced technical company.”) 이 사람, 정말 얄미울 정도로 말을 잘 한다.

옛날에는 두리뭉실한 사람과 기업이 성공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혹시 독자 개인 또는 독자가 속한 조직은 지금 모든 걸 다 잘하려 하지 않는가? 독자가 지금 있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갈 때 이력서를 쓰려고 한다면, 독자를 전문인으로 포지셔닝 할 수 있는, 독자가 그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한두가지는 무엇인가? 독자의 회사는 애플 만큼이나 선명한 색채를 띄고 있고, 그 색깔로 인해서 다른 회사와 명확히 구분되고 있는가?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이다.

뛰어난 전략

두번째는 뛰어난 전략을 펼치고 승부수를 던질 줄 안다는 점이다. 1997년에 Next가 인수되면서 애플의 CEO로 (정확히는 인터림(interim) CEO로) 복귀한 잡스는 1998년에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과 아이맥의 출시로 “역시 스티브 잡스” 라는 평가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이란, 애플이 컴퓨터로써 최소한의 경쟁력 갖기 위해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어플리케이션 (윈도우즈 익스플로러와 오피스 등) 의 매킨토시용 버전이 반드시 개런티 되어야 했으며, 이를 안 잡스는 MS 로부터 매킨토시용 어플리케이션의 개발을 개런티 받는 동시에 1억 5천만불어치의 애플사 지분을 MS 에 판매하는 딜을 맺었던 것을 말한다. MS 가 이때 샀던 애플 지분은 7배나 올라서 지금은 10억불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은, 빌 게이츠와 아웅다웅 설전을 펼치던 스티브 잡스에게 상당히 하기 싫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플에 필요한 일이었기에 잡스는 빌 게이츠와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딜을 성사 시켰다. 이러한 MS 와의 딜은 뒤이어 출시된 아이맥 (iMac)의 성공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암만 아이맥이 예쁘더라도 MS 오피스가 옛날 버전밖에 지원이 안 된다면 누가 아이맥을 샀겠는가?

이처럼 97년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98년부터 아이맥의 대 히트라는 성과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98년의 성공은 사실 “시간을 벌기 위한” 단기 프로젝트였다는 것이다. 정작 잡스가 애플에 복귀하고 나서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개선을 추진했던 가장 큰 줄기는 “소프트웨어” 였다고 기사는 적고 있다. 이러한 잡스의 노력은 유닉스 기반의 안정적인 OS 인 애플 OS X과, 매킨토시를 사는 순간부터 평범한 유저를 멀티미디어 전문가로 만들어 주는 iLife 스위트 (여기에는 iTunes도 포함된다) 로 결실을 보게 된다.

즉, 잡스가 진짜 중장기적인 야심작으로 노렸던 건 아이맥의 누드 디자인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였던 것이다. 아주 탄탄한 OS 를 구축하고, 그 위에서 강력한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를 돌림으로써, 매킨토시를 PC와 완전히 차별화 시키려 했던 게 잡스가 애플을 끌고 가려는 전략적 “복안” 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결실이 나타난 것은 2001년 이후의 일이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더더군다나 OS 같은 프로젝트는 더더욱이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큰 기대를 받으며 CEO로 부임한 사람이 갑자기 우리 회사는 한 3년동안 소프트웨어 정비에 신경을 쓸테니 잠시만 우리를 잊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장기적인 성공의 그림을 짜는 동시에 단기적인 성공도 이루어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벌이용” 단기적 성공이 필요했고, 이게 바로 오색 찬란한 아이맥 컴퓨터였던 것이다.

이쯤 되면 전세계적으로 소위 “누드 디자인”을 유행시켰던 아이맥을 보면서 “거봐, 역시 스티브 잡스야” 라며 잡스를 칭찬했던 사람들은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낄 정도다. 그렇다. 실은 시간벌이용 카드였던 아이맥을 보면서, 그게 스티브 잡스의 비장의 카드라고 생각했던 당신 역시 스티브 잡스라는 뛰어난 배우에게 속은 것이다. 아이맥은 디자인이 아주 예뻤던 과도기적 제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마치며

다음 글에서는 스티브 잡스의 세번째 대단한 면이라고 생각되는 “피플, 그리고 컬쳐”에 대해 살펴 보겠으며, 비록 고작 몇 번의 출장에 그친 것이었지만 필자 자신의 애플 본사 탐방기(?)도 간략히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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