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아이팟, 미디어를 꿈꾸다

[from ZDnet Korea]

유학생 S군의 집에는 늘 PC가 한 대 켜져 있다. 그 PC는 24시간 쉬지 않고 고국의 드라마를 P2P를 통해 퍼 나르고 있다. 그 PC가 켜져 있는 한, 그는 한국의 시청자보다도 더 쾌적하게 드라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방송이 해주지 못하던 콘텐츠 배급을 통신은 이렇게 쉽고 허망한 방법으로 해버리고 있었다. 그는 어떠한 미디어도 채워주지 못하던 자신의 욕구를 나름대로의 풀뿌리 방통융합으로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방통융합. 방송과 통신이 뒤섞인다니 통합의 어우러짐이 주는 설렘보다는 20세기가 만들어 놓은 철옹성이 붕괴된다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구독자는 갈수록 감소되고, 광고 수익은 줄어 든다. 힘겹게 언론 고시를 패스해야 겨우 주어지던 기자나 PD란 작위는 이제 우후죽순처럼 태어난다. 블로그에 팟캐스팅(pod casting)까지 누구나 기자도 MC도 될 수 있다 서슬이 퍼랬던 시절 신문이 그렇게도 사수하려 했던 편집권은 포털의 가벼운 낚시질로 변질된다.

신문사 안에서 망치 소리가 들린다. 사옥 안에 스튜디오를 차려 방송국이 돼보려 한다. 방송국은 이미 통신의 영역을 기웃거리며 헤매고 있다. DMB에 IPTV에 이미 미디어의 벽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채널의 수는 늘어만 가고, 무가지가 유행이다. 온 가족이 아침 신문을 돌려 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같은 저녁 드라마를 보는 풍경은 어느새 추억이 되어 가고 있다.

위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경제적으로 가장 활발한 활동 계층이 신문, TV나 라디오와 같은 종래의 미디어를 인터넷을 통해 접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신문이란 포털 화면의 한 켠을 차지하는 뉴스일 뿐이며, TV란 액정 모니터에 떠 있는 하나의 윈도우에 지나지 않는다. 광고주는 이미 광고 효과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유학생 S군이 유일하게 잘 모르는 한국의 콘텐츠가 있다면, 그것은 광고다. 미디어의 직접적인 수익원이 제거된 콘텐츠가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DivX에 광고와 같은 노이즈는 없다. 전통적 수익 구조가 정면에서 부정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방송과 신문이라는 기득권 미디어. 그들이 지녔던 가장 강력한 힘은 펜과 마이크가 지닌 ‘진실의 힘’이 아닌, 독점적 송출권과 대규모 출판 능력이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가 와버렸다. 양질의 콘텐츠 제작 능력만큼이나 미디어의 권위에서 중요한 것은 독점적 배급 구조였다. 9시 뉴스 앞에 앉지 않으면, 이른 아침의 신문 소년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됐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 힘은 이제 인터넷 덕에 무기력해진다. 그 힘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힘은 포털과 검색엔진에게로 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이트에 대한 대중의 충성도란 심히 변덕스럽다는 점을 지난 수년 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변하기 힘든 것은 방문자수와 클릭수가 아니다. 그것은 배급의 구조다. 20세기에 신문과 방송이 구축한 닫힌 배급의 구조. 그것은 한 때는 주파수였고 배급망이었다. 오늘날 그 구조를 만들 새로운 플랫폼은 무엇일까?

우리는 의외의 장소에서 이 플랫폼의 한가지 형태를 엿볼 수 있다. 그 것은 아이팟의 성공이다. 아이팟은 한국 업체들이 MP3 플레이어를 세계에 선보인 한참 뒤에 천천히 시장에 참여해 4년 만에 전세계 점유율 70% 이상을 가져가 버렸다. 아이팟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뇌쇄적인 하드웨어의 압도적 물욕이 아니다. 하드웨어 아이팟과 아이튠즈(iTunes)라는 소프트웨어로 하나의 시너지를 내는 플랫폼을 이루어낸 점이다. 아이팟은 자신을 통해 콘텐츠를 유통 배급시키는 모델을 제안하여, 콘텐츠의 공급자 소비자 모두가 윈윈하는 음악 유통 시장을 형성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부터다. 애플은 10월 12일, TV 사업 기자 발표회를 성대히 치렀다. 동영상 기능이 있는 아이팟을 시장에 내보내면서, 방송사 ABC 등과 제휴를 하여 <위기의 주부들>, 와 같은 인기 드라마를 편당 1.99달러로 바로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공식은 초대 아이팟의 성공 공식이다.

PMP는 쏟아져 나오지만, 아쉽게도 이를 받쳐줄 서비스는 미비하다. 파일은 스스로 조달할 수 밖에 없다. TV 카드를 통하거나 DVD를 렌탈해서 ‘인코딩’해야 하지만, 드라마 한편 보려고 이렇게 귀찮은 일을 할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은 많지 않다. 귀찮음은 어느새 죄의식을 중화시키고 결국 불법의 유혹에 빠지게 한다. 이 굴레를 가볍게 끊어 주는 플랫폼은 환영을 받을 텐데……

잠깐 여기에서 앞 단락을 PMP대신 MP3플레이어로, TV 대신 라디오로, DVD 대신 CD로 바꾸어 읽어 보자. 그들은 비디오가 가능해진 최신 아이팟을 통해 지금 과거의 성공 체험을 반복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팟의 히트는 방송사들과 대등하게 협상을 할 수 있는 교섭력이 된다. 사람들은 왜 MP3캐스팅 대신 ‘팟캐스팅’이라 부를까? 아이팟은 벌써 디즈니와 손을 잡았다. 아이팟 유저에게는 파디스(Poddies)라는 애칭마저 있다.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에 더불어 문화적 힘까지. 기존 미디어가 독점하던 배급력을 대체하는 일은 이렇게 부지런해야 할 수 있는 일인가 보다.

질서가 붕괴되면 기회가 열린다. 방통융합의 기회는 망사업자나 포털 만의 것이 아님을 제조업자 애플이 증명하고 있다. “모든 콘텐츠가 파일이 된다면 광고는 어디에 끼어 들어가야 할까? 밖에서 그렇게 절실하게 뉴스를 볼 필요가 있을까? 공짜로 봐 왔는데 굳이 왜 돈을 내야 할까?” 기회란 이러한 의문에 답을 하려는 모두의 것이다. 옥션인 eBay가 인터넷 전화 Skype를 매수한 의외의 행위도 그러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간다.

지상파와 종이 신문이 미디어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된 21세기. 그 빈 자리 한 켠을 차지하는 방법을 아이팟은 지금, 아직 그들의 플랫폼이 수입되지 않은 우리에게도 가르쳐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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