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






크리스마스 휴전, 큰 전쟁을 멈춘 작은 평화8점
미하엘 유르크스 지음, 김수은 옮김/예지(Wisdom)

 


“모든 군대가 동시에 파업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렇다면 아마도 이 분쟁을 해결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 1914년 11월,대영제국 해양장관 윈스턴 처칠 (p.57)



전쟁 초기의 몇달 동안 서부전선 전체의 참호들에서는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합의가 통용되었다. 볼일을 보러 갈 때에는 공격하지 않았다. 바지를 벗은 상태에서 죽이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식사할때는 공격하지 않았다. 막대기에 고정해서 엄호위에 높이 세운 표지판으로 각자 식사시간을 알렸다. 대략 1시간 정도는 사격을 중지했다. 표지판이 회수되면 다시 전쟁을 계속했다. 이 약속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사령관들 역시 알고 있었다.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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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차 세계대전은 흔히 The Great War로 표현된다.
‘전쟁은 모험’이라는 낭만적이기까지 한표현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기술의 발전은 전쟁의 양상을 처절한 살육전으로 변모시켰다.
지루한 참호전이 계속되었고, 병사들은 날마다 죽음을 경험해야 했다.
대치한 두 진영의 참호 사이 무인지대(no man’s land)에서
죽어가는 동료들의 비명소리를 며칠이고 들어야 했다.



2. 이책은일차대전의 각국 병사들이 크리스마스에 맺었던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비공식적인 휴전이 존재했었음을,
그리고 그 규모와 그 기간이 상당한 것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전쟁을 독려하는 각국 지도자들에 맞서, 전선의 병사들은
크리스마스 캐롤과 “we not shoot, younot shoot” 이 한마디의 외침으로 평화를 만들어 냈다.



3. 이것은 아마도 같은 종교와 문화를 공유한 유럽의 전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휴전당시 독일군의 한 병사는 전쟁전 영국 런던의 호텔 급사였고, 능숙한 영어를 구사했다.
전쟁전 같은 학교의 동창들은 서로 적이 되어 만났다.
휴전을 통해 병사들은 서로의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보낼 편지를 서로 부탁했다.
하지만, 베트남전에서도, 이라크 전쟁에서도 가능한 일이었을까?



4. 한국전쟁의 동막골은 적대하던 병사들의 희생을 통해,무사할 수 있었다.
영화속 자발적으로 뭉친 연합군이 마을을 지켜내었던 것처럼, 일차대전의 참호속 병사들은
자발적 휴전을 통해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내었다.
하지만 900만이 사망한 큰 전쟁은 계속되었고,
그 휴전의 당사자들이 한해를 넘겨 다시 크리스마스 휴전을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 책에서 밝힌 내용은 프랑스에서 영화로도 제작되어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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