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버전스 시대의 새로운 거대 틈새시장, 롱테일(Long Tail)

[from LG경제연구원]


인터넷 시대에 성공한 기업들은 수익 창출에 대한 기여도가 낮아 과거에 사소하게 여겼던 다수의 소비자에게 주목하고, 그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업모델을 개발했다. 이러한 트렌드를 뒷받침하고 있는 롱테일 현상의 원인과 향후 기업 경영에 주는 시사점을 살펴본다.


거대한 니치

평균보다 다소 넉넉한 체형으로 고민하고 있는 이귀염(24)씨는 옷을 구매할 때마다 불편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웬만큼 발품을 팔지 않고서는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더군다나 마음에 맞는 예쁜 디자인을 찾기는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가격은 왜 또 그리도 비싼지 천 값이 많이 들어서 옷이 비싸다는 얘기를 듣다 보면 맥이 풀리기 일쑤였다.

그랬던 귀염씨에게 반가운 소식들이 쏟아 지기 시작했다. 온라인 쇼핑몰이 들어서더니 빅사이즈의 옷들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옥션, G마켓, 인터파크와 같은 대형 쇼핑몰들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빅사이즈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온라인 매장들도 30여개가 넘는다. 좀 더 차별화해서 럭셔리한 빅사이즈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장들도 생겨나기 시작 했으니 이제 귀염씨의 고민들은 옛 이야기가 된 듯하다.

인터넷에서 빅사이즈 의류를 찾아보면 여성 의류만도 일만 여 점 이상 다양하게 팔리고 있다. 도대체 이 많은 종류의 빅사이즈를 찾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과거엔 찾기조차 어려웠던 이런 틈새 제품들이 온라인 시장에서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매력적인 시장 규모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사소한 80%에 주목하라

80/20 법칙, 또는 파레토의 법칙은 오랜 기간 동안 비즈니스의 황금률로 자리잡아 왔다. ‘80%의 효과는 20%의 노력으로 얻어진다’, ‘회사 매출액의 80%는 20%의 핵심 고객으로부터 나온다’는 식의 믿음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믿음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또 한 가지의 신념과 결합되어 기업 전략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게 된다. 즉, 20%의 핵심 고객이나 핵심 제품을 선별하여 거기에 역량을 집중하자는 것이다. 핵심적 20%를 찾아내는 것은 기업의 전략 부서와 마케팅 부서의 핵심 목표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80/20의 황금률에 어긋나는 예외적 현상들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 옥션과 이베이는 사소한 80%의 고객에 집중하여 성장한 대표적 기업이다. 영세한 중소 사업자에 불과했던 공급자들과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기업의 외면을 받던 자잘한 고객들을 연결해 주는 것이 이들 기업의 핵심 사업 모델이다. 분절된 다수를 하나의 다양한 소수 집합체로 만들어주는 옥션과 이베이는 이제 젖병부터 항공기까지 판매하는 글로벌한 장터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 열풍의 주역이라 할 만한 구글을 보아도 그렇다. 구글의 주된 광고수입은 포춘(Fortune)500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아니라 꽃 배달업체, 제과점, 웨딩샵과 같은 개미 군단들이다. 기존 광고 시장에선 명함도 못 내밀던 영세 사업자들인 이들이 집합적 시장을 이루어 거대한 수익원으로 재 탄생한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오프라인 서점인 반스앤노블스(Barnes & Nobles)는 13만 여 종류의 책 타이틀을 팔고 있다. 그런데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책들의 50% 이상은 이 13만 개의 타이틀 이외에서 발생한다. 대중적인 베스트 셀러가 아니거나 비주류의 책들이 상당한 규모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그림 1> 참조). 아마존은 최근 이 꼬리부분에서의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매출도 물론 중요하지만 주된 이유는 이 책들은 아마존에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고객들의 로열티를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사소한 것으로 간주되던 나머지 80%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을 가리켜 롱테일(Long Tail)이라 한다. 시장의 중심이 머리에 해당하는 소수의 히트 제품에서 꼬리에 해당하는 다수의 틈새 제품으로 움직여 가는 현상을 설명할 때 주로 등장하는 개념이다(<그림2> 참조).


인터넷이 초래한 유통 구조 변화가 롱테일 현상의 원인

왜 롱테일이 뜨는 것일까? 그 해답은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유통 인프라의 구조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키며 전통적으로 수익이 나지 않았던 시장 영역에 새로이 수익성을 부여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 롱테일 사업모델로 성공한 기업들은 대체로 인터넷이라는 플랫폼을 활용해 유통 코스트를 급격하게 줄일 수 있었다. 인터넷 판매에는 제품 전시 및 판매에 관련된 공간 투자가 없고 재고 부담도 없다. 유통 비용이 줄어든다면 공급자와 판매자는 소수의 몇 가지 히트 제품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특히 인터넷 판매자의 핵심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지 서버의 가격은 최근 들어 급격히 감소하여 온라인 마켓에서 물품을 추가할 때 드는 유통의 한계비용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다시 빅사이즈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원하는 소비층이 분명히 있었지만 오프라인 의류 매장에서는 제한된 전시 공간과 보관 비용이라는 제약 때문에 아무래도 대중적인 제품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온라인 매장들은 이런 제약 요소로부터 자유로운 까닭에 개성 있는 제품들을 많이 취급하면 취급할수록 더 많은 고객들을 불러들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유통의 경제적인 비용에 희생되었던 소비자 주권이 복권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롱테일은 거대 생산 기업과 거대 유통 기업의 틈을 뚫고 자라난 소비 민주주의의 새싹인지도 모른다.

자본력에 기반한 광고와 유통력이 기존의 핵심 역량이었다면 롱테일 시대에는 오직 소비자의 평가에 제품의 운명이 좌우된다. 영화 ‘왕의 남자’가 온라인 고객 평에 힘입어 단숨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을 상기해보라. 이와 같은 시장 인프라와 구매 행동의 근본적 변화는 그간 작은 꼬리에 불과했던 틈새성 재화나 서비스들, 판로를 찾지 못해 사장되고 만 영세 기업의 우량 제품에 새로운 경제적 매력을 부여할 것이다.


롱테일 세계의 전달자, 집산자와 필터

이러한 중대한 변화를 도래시킨 또 다른 장본인들이 있다. 바로 집산자(Aggregator)와 필터(Filter)가 그들이다. 집산자는 옥션, 아마존, 구글과 같이 다양한 소수의 수요자와 공급자들을 한 데 모아서 거대한 소수의 집합체로 엮어주는 자들이고 필터는 소비자들이 이 복잡한 시장에서 좀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구하고 원하는 것을 찾도록 해주는 매개자들이다.

집산자는 아마존이나 이베이처럼 전문적인 유통기업들이 될 수도 있고, 애플의 아이튠스나 델의 직접 판매 모델처럼 생산자가 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필터는 얼리어답터나 DC 인사이드와 같은 제품 리뷰 싸이트, 에누리닷컴 등과 같은 가격 비교 싸이트에 해당한다. 전통적 사업 모델에서는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 제공이 기업의 몫이었지만 전자상거래 시장에서는 소비자 스스로가 정보의 전달자가 된다. 이러한 필터의 등장으로 소비자들의 선택 효율성은 더욱 높아졌다. 저렴해진 유통의 경제적 비용과 더불어 집산자와 필터의 적극적인 역할 수행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선호를 좀 더 손쉽게 표출하게 하는 동인이 된 것이다


롱테일에 대한 오해들

보통 롱테일이 일부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만 가능한 현상이라 생각하기 쉽다. 물론 아직은 롱테일이 적용되지 못하는 분야들이 많다. 앞서 살펴본 대로 롱테일 현상은 만족시켜야 하는 필요조건들이 있다. 생산, 재고, 판매, 유통이 인터넷에 의해 확연히 변화해 나가야 하고 집산자와 필터 같은 전달자들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PC를 조립하는 델(Dell)의 다이렉트 사업모델은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어떤 산업이건 이러한 변화의 전제 조건들이 충족되는 징후들이 나타난다면 롱테일 효과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인터넷 인프라의 확산에 의해 도래되는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롱테일의 개연성은 훨씬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가 확대되면 롱테일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은 언제 어느 장소에서건 핸드폰, PDA와 같은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제품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찾고 주문을 할 수 있다. 심지어, 구매자들은 어떤 제품이 최고인지, 어떤 제품이 자신에게 최적인지 실시간으로 다른 소비자와 채팅해가며 구매할 것이다.

그러나 롱테일의 확산이 히트 제품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머리와 꼬리가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머리에 해당하는 대중적인 히트 제품들이 고객의 관심을 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롱테일에 의해 히트제품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빌보드 차트 50위권 이내의 CD들이 오프라인 판매액의 80%를 차지하지만 온라인 판매에서는 20% 밖에 되지 않는다. 과거 유통 인프라의 제약으로 인해 충분한 잠재력을 표현하지 못한 50위권 밖의 CD들에게 롱테일 현상이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소수의 로열티가 높은 고객을 늘려라

롱테일의 성장은 규모와 자본 우위에 기반한 대기업에는 상당한 위협이다. 꼬리부문의 증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대중적인 히트제품에 대한 수요를 위축(Crowding-out)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떤 시장에서건 한 두 개의 히트 제품들이 싹쓸이를 할 것이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그러나 롱테일의 긍정적 측면도 있다. 롱테일은 기본적으로 제품이 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막연한 다수의 대중시장 보다는 소수의 로열티가 높은 고객, 필터와 같은 전달자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고객을 양산하는 데 집중한다면 이러한 기회를 보다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타겟이 분명한 제품들은 해당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게 되고 이 때 생성된 로열티를 바탕으로 필터가 형성되면 이러한 제품들은 결과적으로 롱런할 가능성이 한층 많아진다. 빠른 제품 교체 주기로 인한 R&D 부담 증가, 수익성 하락 등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기업들에게는 꽤나 반가운 소식이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틈새 시장를 발견하라

구글은 새로운 사업을 런칭할 때의 판단기준이 투자대비 수익(ROI)이 아니라 고객이 과연 이를 필요로 하느냐 하는 점이라고 역설한다. 지메일(Gmail)이나 구글어스(Google Earth)를 비롯한 수십여 가지의 니치성 서비스들이 구글이라는 하나의 집합적인 플랫폼을 이루어 전세계 네티즌들을 유혹하고 있다. 롱테일의 세계에서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틈새를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고객이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집산자와 필터의 빠른 전파력으로 인해 소비자의 잠재해 있던 니즈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이는 곧 규모의 수입으로 연결될 수 있다.


고객 중심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어라

이러한 틈새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 이하 모든 구성원들이 고객 중심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번이라도 더 현장이나 고객들과 접촉하면서 고객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은 시간을 현장에서 보내고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하려고 노력할 때 고객의 분출되지 못한 니즈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쥐잡이 기업에서 세계적인 해충 방제 및 박멸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는 세스코는 아무리 사소하고 엉뚱한 고객의 질문도 지나치지 않고 성심 성의껏 답변하면서 일약 널리 알려진 기업이다. 한때 세스코의 홈페이지가 방문자의 폭주로 마비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특이한 것은 이러한 성의 있는 답변이 광고 전략의 일환으로 의도된 것이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고객 중심적인 조직문화가 만들어 낸 일상적인 이벤트가 필터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대미문의 빅 히트를 만들어 낸 것이다. 세스코의 영업맨들은 고객을 위하는 것이라면 수익과 직결된 일이 아닐지라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부여받고 있다.

롱테일은 향후 새롭게 부상하는 사회경제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유통 인프라의 변화와 더불어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구매행동은 꼬리부문의 성장을 더욱 가속화 할 것이고 기업들에게 고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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