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의 기록 13 – 뮌헨 @ 다하우 수용소 (Dachau)

아침일찍 다하우 수용소로 출발.

s-bahn을 타고, 724번/726번으로 갈아타면 된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온통 눈꽃이다.

수용소로 가는 길

수용소 입구

Arbeit macht frei – 노동이 자유케 하리라.

수용소 정문으로 들어온 20여만명의 수용자들은 45년 4월 말 해방이 될때까지,

오직 소각로의 굴뚝을 통해서만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

NEVER AGAIN, 그리고 누군가 가져다 놓은 장미.

나무숫자만큼의 막사가 있었다고…

침대 한칸에 보통 두명이 수용되었다.

수용소 내의 유대교회

가스실

소각로

가스실로 가는 길

 

 

 해가 하늘에 걸린 오후에도 나무를 뒤덮은 눈꽃이 사라지지 않을 만큼 추운 날씨.

 

1933년 3월 다하우 수용소는 사회주의자 등 나치의 정치적 반대파를 수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곧 그러나 강제수용소는 유대인의 절멸을 위한 좀더 정교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정비되었고,
다하우 수용소는 이후 건설되는 강제노동수용소의 롤모델이 되었다.
강제노동, 생체실험, 지클론B 독가스를 통한 대량학살 – “유태인문제의 최종적해결(Final Solution)” 등..

이와 같은 강제수용소는 부겐발트,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트레블링카 등
나치 지배하의 전유럽에서 건설되고 운영되었다……

“아우슈비츠는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전쟁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전쟁의 극단적인 형태가 아니다.
전쟁은 항상 끔찍한 사건이다. 유감스러운 사건이지만 우리의 내부에 포함되어 있다.
전쟁에는 이유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나치즘의 증오 속에는 이유가 없다.
그 증오는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밖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 하며 경계해야만 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인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과거에 벌어졌던 일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며
의식이 또다시 유혹을 당해 명료한 상태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까지도….

“이것이 인간인가 “중에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자신의 경험을 글로 남긴 이탈리아의 작가, 프리모 레비

 

 

One Comment

  1. 저는 중국 하얼빈에있는 731부대 건물가보고싶던데…..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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