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 1995…2008


























“데미무어를 닮은 그녀는 부르스 윌리스를 전혀 닮지 않은 나를 사랑했다.


어느날 그녀는 내가 부르스 윌리스를 닮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더니 이제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 사랑할땐 몰랐는데 헤어질땐 그것도 이유가 되었다. 내 잘못인가, 부르스 윌리스 잘못인가. 어쨌든 오늘 나는 완전히 혼자다”



아슬아슬하다. 주크박스속 세장의 반짝이는CD가 돌면서 서로 부딪히지는 않을까? 그러나 서로 교묘하게 피해가며 각자 그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그것은 중경삼림에서 보여지는 인간관계의 왕가위식 은유법이다.



홍콩이라는 동양적인 공간과 현대라는 서구화된 시간의 접점. 영화에서 97년 반환을 앞둔 홍콩의 중경은 제목외에 어떠한 기호로도 간취되지 않는다. 이로서 중경(重慶)은 시공간의 보편성을 획득하면서일상적인 도시의 메타포로써 존재한다.



重慶 – 모든 인종이 드나드는 곳, 매일 5,000여명의 관광객이 드나들고, 200여개의 여인숙이 있는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존재하는 곳. 옆에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 위해 몇가지의 언어를 동원해야 하는 바. 불안한 카메라의 시선처럼 사람들의 의식도 미래도 흔들린다.



5월 1일 기한의 파인애플 캔을 서른개 모으는 날을 기한으로 정하고, 술집에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남자. 비가 언제올지 몰라 레인코트를 입고, 해가 언제 날지 몰라 선글라스를 쓰는 여자. 그들의 직업은 경찰관과 매춘부이자 마약밀매업자로서 극과 극이지만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 ?기는 삶이라는 점에서 같다.



내일을 꿈꾸지 못하는 금성무와 임청하는 만났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어렵지 않게 주고받는다. 국민학교 같은 자리에 앉았던 사람에게까지 전화를 해대던 금성무는 밤새 끊임없이 영화를 보고 먹기만 하고 구두를 닦아 주었을 뿐이지만, 한 여자와 시간을 보냈고, 임청하는 피곤한 몸을 누일수 있었다. 그들은 마음을 먹으면 서로에게 무엇이 될 수도 있고, 어제와 똑같은 타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임청하의 눈을 가린 선글라스는 끝내 벗겨지지 않는다. 두번째 에피소드에서 왕정문이 썼던 썬글라스는 그녀와 양조위 간의 열려진 인간관계를 암시한다고 하면 임청하의 그것은..? 5년동안 사귀던 애인이 타인이 되고, 범죄자는 경찰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어 그를 한없이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오가는 거리에서, 바에서, 호텔에서, 불안한 이 두사람의 관계 맺기는 진행된다. 손쉽게 구하고 먹을 수 있는 콜라와 통조림들은 스쳐지나가는 “중경삼림”을 닮았다.



“눈물 흘리지마 이게 현실인걸 어떻해. 너도 인제 인정해야만 해.


너 예전에는 통통한게 보기 좋더니 왜 이렇게 야위었니”



California Dreaming”을 틀어놓고 몸을 흔드는 패스트푸드점의 여점원과 그곳에 항상 샐러드를 사러오는 경찰관. 늘 거리를 바쁘게 부유하는 첫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들과는달리 이들이 오가는 장소는 고정되어 있다.


점원은 가게안에서 걸래질을 하며 캘리포니아로의 일탈을 꿈꾸며, 스튜어디스를 애인으로 둔 경찰관은 집안에서 비행기를 만지작 거린다. 떠돌이 신세와 붙박이장 신세는 서로를 꿈꾼다. 두번째 에피소드와 첫번째 에피소드는 여로모로 대칭적이다. 밤과 낮의 이미지. 꿈꾸는 여인의 도피와, 방황하는 여인의 엇갈림. 우울한 로드무비와 경쾌한 트랜디 드라마. 샐러드, 볶음밥 같은 음식들. 집에서는 통조림 30개를 다 먹을 동안에도 계속 밖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금성무. 언제나 속옷바람의 양조위. 본인만 알수 있도록 비밀번호를 대어 교환으로 부터 말을 전해듣는 삐삐. 정작 읽힐 사람에겐 소외되고, 가게사람들이 모조리 돌려가며 읽게 되는 편지.



두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서로를 닮아간다. 서로를 길들여가고 그리고, 그 과정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않는다면, 아무리 같이 있어도 더욱더 외로움만 진하게 남는다. 자기가 남에게 영향을 주고 있고, 자기도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없다면 그 만남이 어찌 기쁠수 있을까. 고착된 관계보다 변화하는 관계에서 우리는 희망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두 주인공들은 서로로 인해 변화할실마리만 보였다면, 두번째 에피소드에서 둘은 아예 서로의 자리에 가 있다.


초반 경찰정복의 양조위는 패스트푸드 주인이 되어, 스튜어디스유니폼의 왕정문을 맞이한다.



열려있기도 닫혀있기도 한 공간속에서의 엇갈림. – 동사서독. 그리고 중경삼림.



1995. 09.07.


일기장에서 옮겨적음.



……………..



광화문 스폰지 하우스의 개관기념으로, 스크린에서 중경삼림을 다시 보다.
정성일 아저씨의 “KINO” 매거진 영향아래에서 되도않는 분석을 해가면서 봤던 스무살 무렵,
일기장에 끄적거려둔 중경삼림의 느낌을 다시 옮겨적다.
뽀얀 피부에 주름하나 없는 금성무처럼,
이쁘고도 이쁜 왕정문처럼,
귀엽도다 귀엽도다.
그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 영국령이었고,
데미무어와 부르스 윌리스가 부부사이였으며,
핸드폰에 앞서,삐삐가 사람들의 허리춤에 있었고
서대문로터리엔 드림씨네마 대신 화양극장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의 경험보다는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마치 내 경험인 양 포장했었고,
영화와 씨름을 하며 뜯어먹으려 했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의자 깊숙히 몸을 파묻고, 좀 즐겨도 좋았을 것을..),


첫사랑이 위태위태 해지면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어휘력은 부족하고,
생각은 산만하다


양조위의 눈빛과 금성무의 미소를 좋아한다.



2008. 01.15.


첫번째 영화리뷰 13년후, 블로그에 포스팅함.



……………..




3 Comments

  1. 음 양조위 눈빛 캬아

  2. 동사서독은 수면제죠 완전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내용은 진짜좋긴하지만

  3. 글 잘읽었습니다. 비공개로 담아갈께요.(감사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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