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보스턴에게, 러너라 자칭하는 세계의 한 시민으로부터

BOSTON, FROM ONE CITIZEN OF THE WORLD WHO CALLS HIMSELF A RUNNER

• new yorker의 무라카미 하루키 기고를 번역함. (http://www.looah.com/article/view/1931)

보스턴에게, 러너라 자칭하는 세계의 한 시민으로부터

지난 30여 년간, 나는 서른세번의 풀코스 마라톤을 뛰었다. 전세계 곳곳을 달렸지만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코스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함 없이 여섯번 참가했던 보스턴 마라톤이라고 말할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좋았냐고? 대답은 간단하다. 보스턴 마라톤은 가장 오래된 대회이며 코스가 아름답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 경기에 관한 모든것이 자연스럽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보스턴 마라톤은 모든 행사가 하향식이 아니라 상향식으로 진행된다. 보스턴 시민들에 의해서 상당한 시간을 들여 착실하고, 사려깊게 만들어진다. 매번 경기에 참가할 때마다 수년간 대회를 만들어 온 사람들의 분위기가 곳곳에 펼쳐지는 것을 느끼며, 항상 그리워 했던 장소에 돌아온 따뜻한 감정에 감싸인다. 마법같은 일이다. 다른 마라톤 이를테면, 뉴욕 마라톤이나 호놀루루 마라톤, 아테네 마라톤 또한 놀랍다. 그러나 (그 대회들에 관여된 분들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보스톤 마라톤은 특별하다. 대개 마라톤의 위대한 점은 경쟁의 부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세계 탑 클래스의 선수들에게는 치열한 경쟁일 수 있지만, 나같은 평범한 러너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주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이겠지만)에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마라톤은 결코 경쟁이 아니다. 26마일을 달리는 경험을 즐기기 위해 경기에 참여해서 따라가며 즐긴다. 처음엔 미미한 고통이지만, 곧 고통은 심해진다. 그리곤 마침내 그것을 즐기게 된다. 즐거움의 일부는 이같은 복잡한 과정을 주변사람들과 나누는데에 있다. 혼자서 26마일을 달려보라. 세 네시간 혹 다섯시간의 온전한 고문일 거다. 나는 전에 한번 해본적이 있는데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같은 거리를 다른 주자들과 함께 달리는 면서는 덜 고되게 느껴졌다. 물론 육체적으론 힘들었지만.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 거기엔 마지막 결승점까지 함께 했던 함께 연대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마라톤이 싸움이라면 그것은 온전히 자기자신과의 싸움이다.

보스턴 마라톤 경기에서 헤어포드 거리의 코너를 돌아 보이슬턴으로 진입하면 곧장 곧게 뻗은 넓은 도로와 코플리 광장의 현수막을 보게된다. 그때 느끼는 즐거움과 편안함은 말로 표현할수 없다. 나 자신과 동시에 내 주위 주자들이 함께 해낸 것이다. 하루 휴가를 낸 무보수 자원봉사자들이 돕고, 연도에 늘어선 시민들은 당신과 당신 앞의 주자들과 뒤를 따르는 주자들을 격려한다. 그들의 격려와 도움이 없었다면 경주를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보이슬턴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하면서 가슴속에선 여러가지 감정이 솟아오른다. 긴장에 얼굴이 찡그리지만 동시에 미소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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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스턴 외곽에서 3년여간을 살았던 적이 있다. Tufts 대학에서 2년간, 그뒤 잠깐의 휴지기를 가진 뒤 하버드에서 일년간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머물렀다. 그당시 매일 아침 찰스 강변을 따라 조깅을 했다. 나는 보스턴 시민들에게 보스턴 마라톤이 시민 자신과 도시의 자부심의 원천으로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한다. 내 친구들중 상당수는 정기적으로 경기에 참여하거나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그래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보스턴 시민들이 올해 경기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해 얼마나 충격을 받고, 낙담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폭탄 폭발로 많은 사람이 육체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또 다른 형태로 상처받았을 것이다. 순수해야할 무언가가 더럽혀졌고 나 또한 세계시민으로서 스스로를 러너라 자칭하는 사람으로써 상처를 입었다.
슬픔과 낙담, 분노와 절망의 복합된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1995년 도쿄지하철에서 벌어진 독가스테러와 관련된 내 책 “언더그라운드”를 쓰기위해 연구하고 그 공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사망자들의 유족들을 인터뷰하면서 나는 이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상처를 이겨내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순 있겠지만, 그 내부에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지만, 새로운 종류의 고통이 다시 생겨난다. 다 고통을 이겨내고, 상황을 정리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어야 한다. 고통위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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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보스턴마라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코스는 계속되는 경사중 하나로 결승점 근처 4마일까지 이어지는 심장파열언덕(하트브레이크 힐)이다. 표면적으로 심장파열언덕에서 주자들은 기진맥진하지만 117년 역사의 경기에서 모든 종류의 전설은 바로 이 언덕 주변에서 일어났다.실제로 뛰어보면 알려진 만큼 가혹하고 무자비하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주자들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언덕을 넘는다. “이봐, 그렇게 나쁘진 않네” 스스로에게 말한다. 결승점 가까이 기다리고 있는 긴 언덕을 대비하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뛰어넘기 위해 충분한 에너지를 비축하고, 그리고 어쨌든 극복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심장파열언덕을 넘은뒤 억덕아래를 내려가 평지를 도착해서 거리를 달릴때, 바로 그때 진짜 고통은 시작된다. 최악은 넘겼고 결승점을 향해 곧바로 달려갈 수 있는 그때. 갑자기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근육은 경련을 일으키고, 다리는 납덩이 같다. 적어도 나에게 보스톤 마라톤의 경험은 매번 그랬다.

마음의 상처 또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고통은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서 처음의 충격을 극복하고 진정이 되고난 뒤 찾아온다. 일단 경사면을 걸어 올라 평지에 도달하고 나서야 그 순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끼게 되는 것과 같다. 보스턴 폭발도 바로 이같은 장시간의 정신적 고통을 뒤에 남겨 놓았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마라톤과 같은 행복하고, 평화로운 행사가 그처럼 잔인하고 유혈이 낭자한 방식으로 짓밟혀야 했는지. 비록 가해자들은 밝혀졌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하지만 그들의 증오와 악행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짓밟았고, 답을 얻는다해도, 그닥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같은 종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긍정적으로 앞을 내다볼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를 숨기거나 극적인 치유법을 찾거나 하는 것은 진정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또한 복수를 쫓는 것이 구원을 가져오지 않는다. 이 고통을 기억하면서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성실하게 그리고 조용히 시간을 쌓아갈 필요가 있다. 시간이 걸리지만,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나는 매일 계속 달리는 것을 통해 보스턴 거리에서 상처받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애도할 것이다. 이것이 그들에게 전할 유일한 메시지이다. 대단치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 목소리가 닿기를 희망한다. 또한 보스톤 마라톤이 상처에서 회복하기를, 그 26마일에서 다시 아름다운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이 보여지기를.

일본어 번역 필립 가브리엘

영어로 출판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근작은 “1Q84″이다. 그의 신작이 일본에서 최근 출판되었다

일러스트 Ed Nac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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