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 낯선 존재와의 관계 맺기에 대한 다큐


“학교를 세우고 조선어 교과서를 만들고 재일조선인 교사가 가르치고 그 부모가 학교를 운영하였다. 재일조선인은 그 모든 것을 본국정부의 도움없이 자력으로 이루어냈다. 이는 조선민족의 높은 교육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민족교육사에 재외편(在外編)을 둔다면, 제1항에 기록되어야 할 창조적인 운영이다.”
-오자와 유사쿠(小澤有作), 재일조선인교육의 역사 –

 



영화 속에 삽입된 이 문구를 통해서 감독은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우리의 편견 혹은 무관심으로 인해 잊혀졌던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존재 공동체를 이루며 지켜왔는가. 어떻게 ‘우리’ 아이들의 ‘학교’를 세우고 ‘우리’것을 지켜내 왔는가에 대한 영화임을.



김명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는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그곳의 재일동포 모두에게 “우리학교”라고 불리우는 재일 조선학교인 “홋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다큐멘터리는 ‘우리학교’를 비롯한 일본속 민족학교의 설립과정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일본 우익의 협박과 제도적 불이익을 속에서도 뿌리를 내려, 재일동포 공동체의 중심으로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혹가이도 우리학교’ 고3학급에 초점 맞춰 입학식부터 졸업식까지 1년여 동안 성장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꽃섬’, ‘와니와 준하’를 찍은 촬영감독은 깐느에서 수상한 단편영화 스케이트로 알려지기 시작한 조은령 감독과 함께 작품을 찍기로 했고, 그 둘은 곧 사랑에 빠져 결혼 했다. 6개월 뒤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겨진 김명준 감독은 그녀와 함께 방문했었던 일본의 조선학교를 떠올렸고, 곧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그녀를 기억하기 위한 감독의 관계 맺는 방식이기도 하고, 그 자신을 위한 치유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의 공동체와의 관계 맺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학교’에 어느 날 낯선 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학교에 나타난다. 며칠이면 떠날 것 같았던 그들은 한 달, 두 달..일 년.. 이년이 지나도록 그들의 곁을 지킨다. 관찰자에 머무르며, 서로를 어색해 하던 아이들 사이에서 감독은 어느새, 그들의 공동체 속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일원이 된다. 카메라 앞에서 수줍은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기 어색해 하던 아이들은 어느 순간 카메라 앞에 성큼 다가와서 대화한다. “명준 감독”, “명준 오빠”….대상을 효과적으로, 객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안전거리의 유지’가 미덕이었던 다큐멘터리 연출의 오랜 관습은, ‘우리학교’에선 전혀 반대의 지점을 향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을 대하는 보통의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영화는 새 학기의 시작, 각 학급의 담임선생님이 발표되는 순간에서 시작한다. 이 발표 전까지 누가 우리학급의 담임선생님이 될 것인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각 학급담임이 발표되는 순간 환호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선생님과 어울리며, 선생님과 함께 잠자고, 먹고, 뛰어 논다. 선생님들은 헌신적이고, 아이들과 선생님의 친밀감은 마치 한 가족이나 다름 없다. 혹가이도 ‘우리학교’는 초급부 1학년부터 고급부 3학년까지 12년간의 교과과정을 운영한다. 7살 초급생부터 18, 19살 고급생까지 한 공간에서 배우고 생활하며 공동체를 이루어 교육체이자 생활 공동체로서 ‘우리학교’는 학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우리학교의 일년을 따라가는 영화는 어느 순간, 녹취된 일본 우익의 아이들을 위협하는 전화 협박과 함께 아이들의 밝은 모습으로 등교하는 모습을 오버랩 시키며 영화 속에서 가장 충격적인 지점을 이룬다. 북한과의 정세변화에 따라, 재일교포들은 위협 속에서 싸워나가야만 했다. 일본 사회 속에서 재일조선인은 약자다. 더군다나 민족적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치마저고리를 고수하고, 우리말, 우리글을 잊지 않기 위해 ‘민족교육’을 놓지 않는 그들이라면 더욱 더. 편견의 시선과 제도적인 차별, 우익의 지속적인 위협 속에서도 아이들은 밝고 따뜻하고 건강하다.





아이들은 우리를 먼저 배운다. 장애가 있는 동무를 12년 동안 보살피면서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남을 배려하는 방식을 익힌다. 스스로의 소조활동을 통해 우리말 100% 쓰기 운동을 벌이고, 지각하지 않기 운동을 한다. 이것은 나와 남과의 경쟁이 아니다. 우리와 우리의 경쟁이다. 우리말 수업시간이 있고, 일본어 수업시간을 빼고 일반 교과과정에서는 우리말을 쓰는 것이 원칙이다. 일본학교에서 전학 와 우리말이 서툰 아이도,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도 선생님과 동무들의 배려를 받는다. 조선인 연인을 통해 우리학교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일본 우리학교 최초의 일본인 교원이 된 축구부 담당 체육선생님 후지시로 선생님. 그는 영화에서 ‘우리학교’ 아이들을 통해 나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싸우는 아이들을 알게 되고, 그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우리학교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 일본인 훈남은 우리말을 배우고, 그 자신의 아이들 또한 우리학교에 보내고 싶어한다.



영화 속 한 장면 -일본학교와의 축구시합에서 패배한 우리학교 축구부 아이들은 바닥에 엎드려 풀을 쥐어뜯으며 운다. 아이들은 학교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내 자신을 위해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동포들이 일본사회에서 자부심과 용기를 갖게 하기 위해,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하며, 거창하게는 민족적 자긍심을 위해 이기고 싶었던 것이다.





남을 이기는 교육, 나란히 걷기 보다는 먼저 달려가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 우리에게 익숙한 교육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던가? 영화는 격한 목소리로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순수함을 가진 아이들을 통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부끄럽게 만든다. 눈물 짓게 만든다. ‘민족’, ‘우리’ 라는 말이 시대에 뒤떨어진 촌스러운 단어가 되어버린 요즘. 태어난 곳도 아닌 고향, 북녘의 조국방문을 통해서 감격해 하는 아이들을 보며, 눈빛의 맑음을 알아챌 수 있는 눈을 지닌 아이들을 보며,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손 흔들며 소리치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에게 학교란 무엇인지, 교육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가 무엇인지,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분단 현실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것인지를 일깨운다.



처음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며 오사카 민족학교를 방문해선 강당에 걸린 김정일 사진과 치마 저고리를 입은 뒷모습에 무서워 하던 감독은 이 사랑스런 아이들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그들과 한 가족으로 어울린다. 영화를 맺으며, 감독은 빨리 영화를 만들어 “우리학교”의 아이들과 선생님들 모두 함께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변화시킨 것일까? 영화는 어두운 극장안에서 느긋하게 등을 기대며 ‘조선’국적을 지닌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다룬 감독의 의도를 의심하며 지켜보는 관객들을 어느 순간, 아이들의 눈물과 웃음을 따라 함께 느끼도록 하는 힘을 보여준다. 동무들을 가진 그들이 부럽고, 헤드락을 걸며 함께 놀아주는 선생님을 가진 그들이 부럽다. 하지만 ‘우리학교’는 다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땅에서 동포들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지켜온 것이기에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2 Comments

  1. 영화를 보고나서 님이 글을 접했는데 너무 잘 와닿네요 ^^;;
    감사히 담아갈게요~

  2. 저도 감사히 퍼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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