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서적, 기형도



오래 된 서적(書籍), 기형도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속에서,
텅 빈 희망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서표(書標)를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 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을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단 한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날이 흐리다.
흐린 구름 속으로 하늘은 제빛을 숨기고 축축하고 불쾌한 어둠이 밀려왔다.

16년 전, 3월 7일 기형도가 세상을 떠났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어느때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비가 자주 내리던 봄,
우중충한 날씨엔 어금없이 그의 시집을 집어들곤 했다.

스물아홉.


종로의 어느 극장에서세상을 떠났던,
그의 나이를 어느새 나는 넘어섰다.

무기력함을 편안함이라고 애써 자조하면서,
나는 인생에 서투른 핑계를 덧칠하기 시작했다.



One Comment

  1. 거짓과 참됨을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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