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극장 – 태릉선수촌

[from DramaMob]



‘오빠’가 되지 못한 남자, 이동경



어른스럽고 의젓한 연인. 기댈 수 있는 남자. 이것은 여자들만의 꿈이 아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애인으로 이런 사람을 원하는 만큼이나, 남자들은 자신이 바로 그런 ‘멋진 남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매사에 여유 있고, 사소한 일에 흔들리지 않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연인이 새로 나타난 누군가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도 태연하게 웃고 같이 이야기하며 넘길 수 있을만큼 넓은 품을 가진 그런 누군가 말이다. <태릉선수촌>의 동경이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잔인하지만 과거형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동경이는 바로 그런 누군가가 되려고 했고, 실패했다.

1화와 2화에서, 동경이는 정말이지 완벽한 연인으로 보였다.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슬슬 접근하는 애송이의 이야기를, 킥킥 웃으면서 같이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남자. <태릉선수촌> 초반부의 동경이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고, 적어도 수아와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완벽했고, 그래서 시청자들은 홍민기와 방수아의 슬럼프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아무리 민기가 유치하게 집적거려도, 마루의 말마따나 상대가 안 될 것 같았으니까.

<태릉선수촌>의 1화와 2화가 마치 ‘연애가 쏙 빠진 상태로 진행되는, 스포츠 청년들의 좌절과 극복에 관한 드라마’인 것처럼 보였던 것은 사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정마루야 애초에상대도 아닌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고, 수아에게는 너무도 든든한 남자친구가 있다. 이렇게 안정적인 구도 속에서 초반 설정을 위해, 네 명의 인물들의 동선은 주로 그들의 운동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동경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난 리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작품은 애초부터 네 사람의 사랑과 성장에 관한 것이었다.


3화에서부터 동경이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보여주던 그 듬직한 모습이 동경이의 진정한 내면으로부터 비롯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는 수아 앞에서는 완벽한 ‘오빠’였지만, 민기를 직접 마주대하고 있을 때는 늘 유치했다. 두 사람의 일대일 대면이 처음 시작된 3화의 축구 경기 장면을 떠올려보면, 국제대회 성적이 부진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민기가 속을 긁어올 때, 참는 듯 참는 듯 하다가 결국은 같은 수준으로 내려가 맞상대를 하고 만다. 그것은 자기 여자친구와의 대화 내용을 있는 그대로 다 까발려가며 자신의 우위를 과시하는 식의, 대단히 어른스럽지 못한 대응이었다. 손도 댈 수 없을만큼 고고한 ‘어른’같았던 동경이는 그 순간 ‘동네 형’ 정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민기의 기를 팍 꺾어놓기는 커녕, 오히려 호승심만 자극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바로 그 사건 이후 민기의 작업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이후 술집으로 민기를 불러낸 상황을 봐도 그렇다. 괜히 불러놓고 이죽거리며 시간만 보내는 모습은, 과연 이 사람이 1화와 2화에서 그렇게 멋있었던 이동경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접근하는 젊고 혈기발랄한 경쟁자 앞에서, 어찌해야할지 딱 부러지는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그저 불러내서 슬슬 약만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취객과 싸움이 붙었을 때 동경이 보여준 모습은, 분명 민기보다 더 어른스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성숙함’이라기보단 ‘노련함’으로 느껴졌다.동경은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민기를 완전하게 제압하지 못했고, 점점 떨어져가는 기록 앞에서 자신을 추스르지도 못했다.

잘라 말하자면 동경이는 점점 ‘오빠 노릇’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4화의 클라이막스인 진흙탕 씬은, 역시 지난 리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내용 전개의 개연성과 무관하게 등장하였다. 바로 그 앞에 있던 상황은 대단히 암울하지 않았던가. 권태기에 빠져든 연인 관계와, 두 사람 모두 슬럼프에 빠져 있는 상태에, 주로 받아주는 입장이었던 동경은 계속되는 기록 부진으로 평정을 잃고 있었다. 별로 내키지 않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러 가는데, 뭘 볼지 골라주지도 않고 ‘너 보고 싶은 거로 하자’는 ‘오빠’는 정말이지 달갑지 않은 존재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자기 차에 기스가 났다는 이유로 엉뚱한 수아한테 큰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진흙탕 씬이 없었다면 이 드라마의 4화는 정말이지 암울한 분위기로 끝났을 것이다

그렇게 뒹굴고 확 풀어버리는 모습이, 수아가 둘 사이의 관계와 슬럼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벌인 해프닝이었다면, 이미 그 시점에서 동경은 수아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다. 민기에게 수아가 호감을 느꼈던 장면들을 되짚어보면, 그것들은 하나같이 유치했지만 그만큼 직접적이었고, 우악스럽고 세련되지 못했지만 그 단점들을 능가하는신선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경이 슬럼프에 빠진 수아를 도닥이기 위해 했던 일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품위를 훼손하지 않는 것들이거나, 혹은 그들이 연인으로서 늘 해오던 일상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들이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해주거나, 영화를 보러 가고 드라이브를 하는 일 등.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정말 다른 사람이 뺨을 때려서 엉엉 소리가 나도록 울려주고 있을 때, 동경은 수아를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다. 그것은 분명히 잘못이었다.

현실적인 부분을 따지고 들어가면, 동경이 국가대표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없었다는, 너무도 직접적이고 말초적인 부분이 언급되지 않을 수 없다. 동경은 그런 상태에서 수아에게 ‘결혼하자’고 말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까지 일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 프로포즈가 쐐기를 박았다고 볼 수 있다. 수아가 현실적인 측면에서 타산적으로 굴지 않았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 프로포즈를 통해 동경은, 자신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만큼 흔들리고 있으며, 도저히 자기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데도, ‘도와줘’라고 말하는 대신 ‘우리 잘 해보자’라는 식의 애둘러가는 답변을 택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마지막 회의 회상 장면에서 드러나다시피, 수아는 유치해도 톡 까놓는 남자 취향이었다. 그런 본질적인 부분을 동경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는 마치 지금의 민기가 그렇듯이, 과녁 뒤에 숨어서 화살에 맞은 척 하며 관심을 끌고, 지하철에서 괜히 말 걸고 이름을 물어보는 식으로 접근해서 수아의 마음을 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어느새 동경은 ‘오빠’가 되어있었다. 좋고 따스했던 그 5년 동안은 그래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식의 관계 설정은 두 사람의 본질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 각자에게 힘든 시절이 찾아오고, 그 사이에 더 발랑 까진 누군가가 끼어들면서, 결국 솔직하지 못한 어른스러움은 꾸밈 없는유치함에 밀려나고 말았던 것이다.

“어이 방, 자네가 왜 수영이 안되는지 알아? 이 어깨에 힘이 꽉 들어가서 그래.” 동경은 말했다. 많은 경우 남에게 하는 충고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동경이 수아의 마음을 붙들지 못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어깨에 힘이 꽉 들어가 있었고, 그래서 제대로 휘저어보지도 못한 채 가라앉고 말았다. 그 또한 민기와 마찬가지로, 유치한 남자였지만, 수아와의 관계 속에서 어느새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오빠’ 역할을 하고 거기에 고착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의 성숙하지 못함은 처음에는 민기에게, 다음은 수아에게, 최종적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서서히 드러났다. 마지막 헤어지는 장면. 멈칫거리며 손을 치켜드는 동경은, 솔직히 좀 무서웠다. 한 대 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들 정도로 그는 평정을 잃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서, 탄식을 내뱉으며 수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결국, 쥐어짜고 또 쥐어짜서 결국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잘 먹고 잘 살아라’였다. 그렇게 당당하지 못한 대사를 내뱉으면서도 그는 목소리의 톤을 풀지 않았다.

안 좋은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는 일은 정말이지 사람의 진을 다 빼놓는다. 하지만 이미 쌓아온 5년이 있었기 때문에, 동경으로서는 처음 수아를 꼬드기던 그때의 모습으로 하루 아침에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가정법은 의미가 없다. 그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돌변했다면 민기가 개입하기 전에 그들의 관계가 더 빨리 망가졌을 수도 있다. 아무리 나쁜 선택이라고 해도 최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추억마저 망가뜨리지 말아달라는 수아의 말은, 그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태릉선수촌>은 대단히 잘 만들어진 청춘 스포츠 멜로드라마이기 때문에, 오히려 작품 자체에 대해 비평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물론 이 리뷰는 결코 쉽게 가려고 쓴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는 눈으로 지켜본 많은 시청자들이, 나와 같은 심정으로 특히 동경이를 안타까워 하고 있을 것 같아서, 한마디 덧붙여 보았다. 그밖에도 할 말은 많지만, 그 많은 이야기들은 <태릉선수촌>의 팬 여러분에게 직접 맡겨도 좋을 것 같다. ⓒ호모 드라마쿠스-dramamob.com



‘사랑하는 사람’의 진정성

<태릉 선수촌>의 7,8회는 이전회에서 성취한 것들을 떼어놓고 독립적으로 봐도 할말이 많은 드라마다. 특히 연애, 그리고 사랑의 한 시절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그렸던 드라마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무너진 오빠’ 이동경에 대한 글은 지난 리뷰에서 노정태기자의 글로 대체하고, 이번에는 홍민기의 대사를 중심으로 <태릉 선수촌>이 ‘사랑하는 이’들을 어떻게 그려내는지 살펴보자.


“점심이나 저녁을 같이 하죠. 아니면 다른 거라도.”


아니면 하고 말할 때 목소리가 약간 갈라졌다. 이 단어를 글로 써 놓았다면 말로 했을 때보다 얼마나 단단하게 느껴졌을까. 내가 필자 였다면 견고하고 단단하고 ,문법적으로 강력해 질 수 있었을 것이다.[할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 펜을 잡는다]. 그러나 그자리에는 필자가 아니라 비틀거리고, 물이 줄줄 흐르고, 궁색하고 목소리가 갈라지는 화자 밖에 없었다.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 가- 중)


소설의 한 장면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언어는 완벽한 문법, 견고하고 흠 잡을 데 없는 ‘필자’의 위치가 아닌, 궁색하고, 목소리가 갈라지는 ‘화자’의 위치에 놓여진다. 사랑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말이 진실되고 강력하기를, 타인을 설득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마치 잘 쓰여진 ‘글’처럼, 그러나 자주 그 희망은 좌절되고, 그래서 사랑하는 이는 글보다 누추한 말로, 발화되는 순간 어느덧 사라지는 변변치 못한 소리를 꾹꾹 눌러가며 내뱉는다.


인정옥 작가의 대사 (특히 네멋과 아일랜드)는 문장구조를 아랑곳 않고 내뱉아진다. 마치 이전에는 텔레파시로 대화하던 이들이 그들에게는 불필요하던 말을 갓 배워, 마음과 생각을 서툰 언어로 처음 내뱉는 것처럼, 그래서 때로는 인정옥 작가의 인물들은 논리의 세계에 발 딛고 있는 우리와 멀고, 또 비현실적인 듯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다시 태릉의 대사로 돌아가 보자. 문법에 어긋난 태릉의 대사들은 인정옥 작가의 대사들과 형태는 비슷하지만 큰 차이점은 말하는 사람, 즉 화자의 현 상태를 반영한다는 것에 있다. 누추하고 목소리가 갈라지는 화자의 입장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태도, 그 적나라한 모습은 언어 자체가 어려워서 더듬더듬 뱉어내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입장에 처해있기 때문에, 어렵고 답답하고 또 초라해 질 수 밖에 없는 ‘화자’의 현 상태다.



홍민기: 형은 쿨이 돼요? 나는 안돼요. 쿨, 수아한텐, (중략) 저도요, 내가, 둘 사이에 껴든, 똥덩어리 같다는 생각은 해봤는데요. 그래도, 똥도, 누구 좋아 할 순 있는 거잖아요. 똥도 행복해질 수 있는 거잖아요.


선수촌 안 도서관에서 동경을 기다리던 홍민기(이민기)가, 동경과 나누는 대화 중 한 부분을 영상을 보며 그 호흡 그대로 옮겨봤다. (물론 백문이 불여일견, 글로 옳긴 것 보다 한 번 더 보는 편이 훨씬 낫겠지만.) 한 단어씩 말을 끊어내는 홍민기의 대사는 이전 같지 않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남자친구에게 나 어쩌면 좋으냐고 묻는 이 장면에서는 아무 말이나 거침없이, 편하게 말하던 혈기방장한 이전의 홍민기는 간데 없다. 눈을 부릅뜬 홍민기의 태도는 당당하지만, 홍민기의 상태는 ‘누추하고 물이 질질 흐르는 궁색한 화자’의 모습이다.


상상해보자. 동경과 함께 있던 방수아가 수영장에서 나와 그 곳에서 기다리던 홍민기를 뒤로하고 냉담하게 갈 길을 가던 장면- 그저 말도 못하고, 하우~ 후아~ 그저 타는 속에 가쁘게 숨만 몰아 쉬던 홍민기가 만약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등의 멋들어진 말을 던졌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라고 부추겼지만…심히 죄송하다.)


드라마에서 종종 보여지는 멋진 대사들은 그들의 일상에서 사용 될 때 인물의 재기 넘치는 모습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 그것도 짝사랑의 곤란한 입장에 처해있으면서도 항상 여유작작, 잘빠지고 미끈한 대사를 읊어대는 남 혹은 여 주인공들은 <태릉 선수촌>이 보여준 ‘사랑하는 사람’의 진정성을 절대 얻어낼 수 없다.


(가까이는 “이쪽도 저쪽도 윤재희 쪽” 등등의 멋진 대사 종합선물세트인 <프라하의 연인>의 지영우(김민준)를 생각해보자. 결국 대사발이 무색할 정도로 그냥 초라하게 무너지고 만 캐릭터였다.)


드라마속에서 사랑은 종종-나한테 와라, 너한테 온다.- 이렇게 간단한 선언으로 해결된다. 또 그 해결을 돋보이게 하는 명제들로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등- 수 많은 사랑은 축약된다. 이야기와 따로 떨어뜨려 놔도 빛나는 저 명제들은, 결국 또 다른 선언으로 쉽게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드라마 속의 사랑은 종종 말장난으로 전락하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는 대신 순간의 재미로만 그치고 마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 그 이면에 흔들리고 불안해하는, 나도 당신도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내면의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나도 당신도 아는 엄연한 사실이다. 힘겹게 말해지는 누추한 대사일지언정, 우리가 오래 기억하는 드라마 속의 ‘사랑하는 사람’은 인물들의 멋진 대사 이전에, 캐릭터의 내면과 처한 상황에 대한 탐구가 만들어낸다. 궁색하고 물이 질질 흐르는 화자, 홍민기, 이동경의 모습처럼…ⓒ호모 드라마쿠스-dramamob.com



One Comment

  1. 마지막회..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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