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진보

김규항 – 이진경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규항 – 밤의주둥아리들


신기섭 – 해서는 안될 말




사방에 적을 만드는 진중권의 호전적인 글솜씨와는 달리, 김규항의 글이 한톤 낮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내게 더 큰 울림을 가지는 것은, 그의 글을 통해 드러나는 삶 속에서 그가 가진 말과 실천에 대한 일치를 위한 노력과 성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 주의자를 자처하기전에, 그러한 실천을 위한 삶에서의 성찰이 중요해보인다.



그의 글중 어떤 글들, – 밤의 주둥이라들이나, 이진경에 대한 평가 – 는 일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지만, 이진경의 인터뷰를 보고 나면 어느정도 그에 대한 평가를 수긍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강단PD라는 고색창연한 비판으로부터, 지적허영, 지식오파상 등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진경의 글은 한때 꽤나 매력적인 것이었다. 90년대 초반 ‘철학과 굴뚝청소부’라는 말랑말랑한 유물론 개론서로부터, 시작해 탈주, 노마디즘 등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포장되어 출판되었고, 대학에 유행하였으며, 한줌밖에 남지 않은 좌파 운동권들의 그해 대학선거 슬로건을 선도했다.



세련되고 현학적인 수사로, 혁명을 팔아먹던 이진경은 이제 그 사유의 시작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것처럼 보인다.다시 ‘맑스로 돌아간다’는 그에게 맑스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그는 또 어느 경계를 넘어 탈주할 것인지…



고전은 늘 곁에 두고 읽으라고 있는 것일게다.
그에게 먼저, k.marx의 고전, ‘포에이르바하에 대한 테제’를 다시 권한다.


더불어 수많은 핑계로 변명하기에 익숙해져 버린, 내 자신에게도.



11.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세계를 단지 여러가지로 ‘해석’해왔다.
그러나 정작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다.



3 Comments

  1. 글 속에 내비쳐지는 진정성을 실천하려고 애쓰는 김규항씨에게 어쩔 수 없는 애착이 가곤 합니다. 그에게 살짝 화가 날 때도 있었을 망정 그의 태도.엔 항상 먹먹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2. 이진경씨 관련해서는 단순한 애착, 감상 이상의 복잡한 기억의 뒤엉킴이 있습니다. 직접 그 분을 만난 일은 없으나, 그와 저 사이를 매개하는 인물들이 있기에 그러할 것입니다. 올 봄 본격적으로 제기된 이진경씨의 들뢰즈 해석에 대한 문제 제기는 그런 면에서 씁쓸함과 서글픔이 동반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서프라이즈 이진경씨 인터뷰는 그러한 우려를 더욱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여전히 동감하고, 나와 동질의 인물임을 직감하면서도 완벽하게 ‘성인’일 수는 없는.. 이상적인 인물일 수만 없는 그를 발견한 느낌이랄까요? 복잡한 마음입니다.

  3. 음. 마지막글 마음에 와닿아요 그리고 포에이르바하에 대한 테제. 구해봐야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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