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핀처 : 느와르를 구원한 빛과 어두움의 직조자



“Some people go to the movies to be reminded that everything’s okay.
I don’t make those kinds of movies. Everything’s not okay.”


데이빗 핀처,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Weekly)”와의 인터뷰 중에서




종종 그 영화적 만듦새와 스타일에 의해, 박찬욱 감독과 함께 비교대상이 되는 데이빗 핀처 감독은 한때 올드보이의 헐리우드 리메이크작 감독 리스트에 언급되곤 했다. 2002년 <패닉룸 Panic Room”을 마지막으로 느긋하게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면서 소일하던 그가 다시 돌아온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그러나 끝끝내 잡지 못했던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들고.




MTV 신동의 헐리우드 안착기, 에이리언 3




80년대 MTV 용병 출신 중 헐리우드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데이빗 핀처는 리들리 스콧의 호러 <에이리언>, 제임스 카메론의 액션 <에이리언 2>의 뒤를 이어 전혀 새로운 느와르 스타일의 <에이리언 3>로 데뷰하였다. 호러와 SF액션 그 각각의 정점에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전작에 뒤이어 그는 전혀 낯선 영역으로 이 프랜차이즈를 밀어 붙였고,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에일리언 3 Alien 3>라는 4000만불 짜리 괴물 앞에서 그에게 주어진 과제 – 리플리와 에일리언의 섹슈얼리티와 괴물다움이 지배했던 전편들과의 차이를 견지하는 동시에, 전편들의 주무대였던 노스트로모호에 필적할 만한 공간을 어떻게 축조하느냐는 것 – 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답안이었다.


그것은 지하의 감옥에 갇힌 인간들과 그들을 사냥하는 에일리언의 추격전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뮤직비디오의 연출을 통해 익힌 시간감각과 스타일리시한 화면 연출은 스테디캠을 통해 빛을 발했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와도 같은 강제 노동 현장과 <터미네이터 Terminator> 의 제철소를 연상시키는 공장, 음습한 냉기의 복도가 뒤얽힌 지하 감옥은 핀처의 카메라가 뛰어노는 놀이터가 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그곳에서 핀처의 에일리언3는 에일리언 1의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에일리언 2의 밀리터리 액션을 넘어 시각적 부재에서 오는 공포로 관객들을 몰아간다. 규칙과 방향도 모른 채 계속 이어지는 이상한 사건들, 정체성의 혼란과 불안 속에서 흔들리는 캐릭터, 고립된 공간 속의 빛과 어둠의 교차 – 시리즈물의 구조 안에서 이미 선보인 이러한 양상들은 이후 그의 영화를 설명하는 ‘데이빗 핀처적’ 서명이 된다.




포스트 느와르의 시작, 세븐






그는 <세븐 >으로 단 한 걸음에 포스트 느와르의 선두주자가 되었으며, 그의 모든 것을 이 영화 <세븐>에서, 그리고<세븐>의 거의 모든 것을 포스트 느와르로 설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븐>은 지금은 너무 흔한 방법이 되어 버린 블리치바이패스 Bleach bypass 기법을 통해 어두침침한 화면 속에 예술가적인 영감으로 충만한 연쇄살인범을 세기말적 복화술로 그려낸다. 시종일관 비관적인 분위기는 그의 데뷔작이자 신인감독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에이리언> 시리즈의 3편에서 이미 선보인 바 그대로다. 롤링 스톤즈와 마돈나, 스팅 등의 뮤직 비디오나 CF를 작업했던 전력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그는 영화의 이런 분위기를 구축하는데 인더스트리얼 뮤직이나 스타일리시한 MTV적인 양식을 십분 발휘했다.



다리우스 콘지라는 최고의 파트너를 만난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정말로 거장들은 사라지고 스튜디오 시스템은 붕괴된 할리우드가 기다렸던 새로운 재능을 입증한다. 이러한 그를 위시하여 퀸틴 타란티노(<저수지의 개들>), 로버트 로드리게즈(<엘마리아치>), 브라이언 싱어(<유주얼 서스펙트, X맨, 슈퍼맨>)는 포스트 아메리칸 시네마를 대표하는 시네아스트로 불리는데, 놀라운 것은 이들 모두가 필름 느와르를 그들의 출발점으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세븐>의 데이빗 핀처는 ‘별자리 연쇄살인사건’에 기초한 명민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폭식, 탐욕, 태만, 색광, 거만, 질투, 분노 등 세기말의 미국식으로 각색된 기독교의 7가지 대죄를, 젖어 있거나 먼지로 자욱한 폐소공포를 자아내는 밀폐 공간(<파이트 클럽> <패닉룸>에서 반복되는)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현대 미국인들의 불안 의식이 발로되는 순간을 효과적으로 포착해낸다. 이 영화 이후 관객과 만나는 느와르 영화는 그 자신, 스스로를 설명하면서 ‘세븐과 어떻게 다른가’, ‘세븐에서 어떠한 영항을 받았가’, – 순순히 자백하거나, 혹은 추궁당해야 했다.




파이트 클럽




‘컬트의 전도사’인 짐 호버만이 꼽은 90년대의 컬트이자, 지난 세기의 걸작중에 하나인 <파이트 클럽>은 헐리우드에서 나온 영화 가운데 가장 불온한 상상력을 담은 작품이다. 블루 칼라의 분노를 폭발적인 화법으로 발언하는 척 팔라닉의 논쟁적인 원작, 브래드 피트와 에드워드 노튼의 스타 시스템, 그리고 데이빗 핀처의 스타일이 조우한 이 기막힌 결합은 애초부터 논쟁을 몰고 올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세븐>과 <더 게임>에서 그랬듯이 <파이트 클럽>에서도 데이빗 핀처의 퍼즐과도 같은 폐쇄 공간 속에서 우리에 갇힌,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하고 비등하는 남성성에 의해 분열된 미로 같은 악몽의 도시가 펼쳐진다.



그곳에서 주먹 싸움은 마조히즘과 호모 에로틱한 흥분, 냉소적 통찰이 신랄하고 매혹적인 비주얼에서 펼쳐지며 점점 나아갈수록 상황이 통제 불가능해지면서 극단적 새디즘에 이른다. – 통제 control 의 상실은 데이빗 핀처가 선호하는 주제의 하나이기도 하다 – 후기자본주의 소비문화에 대한 저항의 방식으로 육체와 폭력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모든 것을 무(??)로 돌리려는 움직임들은 진짜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서로를 피떡이 될 때까지 치고 받는 영화 속 인물들만큼이나 관객들을 괴롭히기에 충분하다. 결과적으로 <파이트클럽>은 정신적 불황을 겪고 있는 부르주아 여피가 모든 것을 버리고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로드무비인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계급을 버리는, 사회의 흐름에 역행하는 이와 같은 <파이트 클럽>의 과격한 선동은 필연적으로 영화가 컬트가 되도록 이끈다.




조디악 – 너희들은 나를 결코 잡지 못한다.




데이빗 핀처는 점점 저돌적인 방식으로 헐리우드의 안전제일주의 원칙에 제동을 걸고 있다. <파이트클럽>은 어떤 의미에서 헐리우드산 블록버스터의 규칙을 거의 무시한 영화였다. 단지 스타 스템만 지켜지고 있을 뿐 어둡고 우울하고 복잡하고 불편한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아마 박스오피스를 석권하는 저력은 아마도 난무하는 직설이 지닌 통쾌한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장기인 폐소공간에서의 스릴러 – 뛰어나지만 인상적이지 못한 <패닉룸>을 선보인 그는 올해 <조디악>으로 성공적으로 복귀한다.


단 한번의 카 체이싱, 단 한번의 총격전도 없이 그의 말을 빌자면, “남자가 있고 그 남자가 방에 들어가서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길을 걷는” 장면들의 연속인 이 단조로운 호러무비의 탈을 쓴 수사물이자 스릴러는 평론가들로부터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이 살인자의 영화가 아니라 살인자를 쫓던 형사들의 이야기였던 것처럼, 핀처의 <조디악>은 연쇄살인자에 포커싱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살인자의 뒤를 쫓던 형사, 범죄전문 기자, 그리고 소심한 카투니스트를 다룬다. 데이빗 샤이어의 음악이 역설적으로 아름답고 영화의 초반,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살인장면은 이후 영화 내내 단조로운 카메라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캐릭터들이 가진 신경증과 두려움에 몰입시키면서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핀처의 전작 <세븐>을 통해 어두움, 비, 분노와 폭발, 신경증을 테마로 한 스릴러와 정 반대의 지점에서 도플갱어와 같이 영화 <조디악>은 70년대의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태양 아래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과 그 살인자를 추적하며, 영혼을 사로잡히고 끝내는 좌절하고 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냉정한 카메라의 시선으로.



One Comment

  1. 핀처영화 진짜좋죠 ㅠㅠ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