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빌어먹을 놈의 연애, 외로움



남재일 남의 책은 잘 읽는 편인가요?

김훈 자랄 때는 공자를 많이 읽었어요. 공자는 자기 삶을 과장한 적이 없고 분명한 말만 해요. 삶에 대한 태도가 아주 경건하고 겸손하죠. 나는 노자는 좋아하지 않아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해요. 동아시아의 가장 아름다운 인간은 공자예요. 까불지 않는 사람. 까불면 안 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람. 요새 우리 젊은 작가들이 쓴 건 잘 안 봐요. 아무런 감흥이나 공감을 느낄 수가 없어요. 사이버 공간에서 장난하는 것 같아.

남재일 언어와 현실의 거리가 안 느껴진다는 건가요?

김훈 살아 있는 인간의 삶과 하등의 사소한 관련도 없는 사이버 공간의 장난 같은 느낌이 들어. 문체 자체가 판타지가 돼 있더구만. 사랑에 빠지니까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입자가 보랏빛이었다고 썼더구만. 이런! 망할 자식이 있나. 근데 그런 인간들이 무수해요. 나는 젊은 애들을 보면 그 나이를 지나온 게 정말 다행스러워. ‘저런 황당무계하고 무지몽매하고 동서남북 상하좌우 모르는 그 시절을 나는 그래도 지나왔구나’ 하는 게 참 다행스럽고 다시는 젊어지고 싶지가 않아요. 꼭 군대에서 제대한 것 같아요. 젊은 애들은 인간의 당위와 현실은 층위가 다르고 작동방식이 다른 건데 그에 대해 무지하거나 알더라도 일부러 부인해. 이념이나 가치가 인간의 현실을 일사불란하게 이끌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젊은 놈들이 있어요. 그런 애들은 그래도 나은 놈들이에요. 그것도 없이 맹탕 날라리만 하는 놈들도 있잖아요. 어쩌면 그런 것이 ‘청춘은 아름다워라‘는 명제에 속하는 사태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 그래서 청춘이 아름다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몽매함이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인간의 진보적 가치건 자유이건 물적 토대에 의해서만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요. 물적 토대를 상실하면 그 순간에 우리는 모든 가치를 상실하는 거예요. 그건 젊은이가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계의 조건인 것이죠.

남재일 몸이라는 물적 토대가 나이가 들면 변화하는데, 젊을 때는 그것에 휘둘리거나 실수하기도 하잖습니까. 젊었을 때는 몸의 욕망이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나이에 따라 사고의 변화가 심한데 그런 변화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김훈 젊었을 때 내 꿈은 밥을 먹는 것이었어요. 신문사에 들어간 것도 목구멍에 풀칠하려고 한 거고. 그런데 어떤 놈들은 사회의 목탁이 되기 위해 들어왔다고 그러대. 저런 황당한 자식들이 있나 했지. 신문사에 들어갔다고 해서 대학 갓 졸업한 놈이 사회의 목탁이 될 리가 없잖아. 어림없는 소리를 하는 거지. 그러면서 자기가 사회의 목탁이라고 다니는 거야. 난 그런 태도를 정말 경멸했어요.

남재일 연애나 사랑에 대해 거의 안 쓰시지 않습니까. 원래 경험이 없어서 안 쓰는 것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나이 들어보니 그것들이 웃겨서인가요?

김훈 난 스물네 살에 조혼을 했고, 생활고에 시달렸기 때문에 노동이 애인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는 게 공허하다고들 느끼면 그걸 다 연애로 해결하려 들어. 온 나라가 연애중독에 걸린 거 같아. 그 빌어먹을 놈의 연애, 아이고…. 일부일처제라는 것이 야만 제도이기 때문에 인간이 승복할 수 없지만 부술 수도 없을 거예요. 그렇게 하면 문명 전체가 부서지는 거니까. 일부일처제는 지금 사실 형해만 남았지. 그럴수록 인간은 그 형해를 강화하겠죠. 삶은 공허해지고 연애는 탈출구처럼 유혹할 거고…..어쩔수 없는 거죠. 연애.

남재일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서는 통 언급이 없으시네요.

김훈 나는 개인적인 연애나 치정의 경험이 없어요. 어찌 보면 불구자지. 나는 남자가 좋았어요. 군대가니까 좋더라고. 남자들이 수북이 모여서 서로 욕하고 싸움하고 상소리하고 아무 데나 주저앉고. 아무거나 집어먹고. 육군졸병이라는 것이 도덕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잖아, 욕이나 하고 주는 대로 먹고 훈련하고 땀냄새 나는 게 좋았어요.

남재일 기자 생활에 견주어 작가 생활은 어떤 가요? 일상적인 생활의 패턴은 어떻습니까?

김훈 주로 놀죠. 하루 세 시간 이상 일을 못해요. 자전거 타고 나가거나, 한강 하구 쪽으로 가서 들에서 놀아요. 저녁 때 술 먹고. 운동량은 많은 편이죠. 요새는 비가 와서 못 나갔는데, 심심풀이로 나가면 70~80킬로는 갔다오고 맘먹으면 200킬로도 가고.

남재일 혼자 시간을 잘 보내시네요. 외로움을 별로 안 타시는 건가요?

김훈 외로움? 난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 (좌중 폭소) 어떤 놈이 ‘외롭다‘고 써놓으면 뭔지를 모르겠어. 무슨 심적 상태를 이렇게 표현하나? 사전을 찾아보니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적적한 것이다‘라고 돼 있더만.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내 느낌은 존엄함과 충만감이지. 외롭다는 것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 연애하는 애들 글을 보면 연애하는 핑계가 백이면 백 외로움이더구만. 그게 뭔 호들갑인지 모르겠더라고. 혼자 가만히 있으면 자기 존재에 대한 자신감 속에서 그게 편안하지가 않은 모양이야. 술 먹으면 꼭 전화질 하는 놈들이 있어요. 외롭다고.

남재일 그런데 사람 가까이 있지 않으면 냄새를 맡거나 만져보기는 어렵지 않나요? 그런 부분이 육체로 밀고나가는 김훈의 글쓰기와 어떻게 나란히 이해돼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김훈 인간의 관능이나 몸의 냄새, 육감에 대해 글을 많이 썼지만 나는 인간의 살을 혐오해요. 혼자 있는 게 좋아요. 내가 그걸 탐닉해서 쓰는 게 아니에요. 다만 글쓰기의 대상일 뿐이지. 난 인간 존재가 들러붙어 있는 것보다 뚝뚝 떨어져 있는 게 보기 좋아요. 멀찍이 하나씩 있는 게.

2 Comments

  1. 예전에 읽은 인터뷰를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었어요.
    그의 부인은 참 외롭겠구나…^^;;

  2. 퍼간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