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사람들 – 이영화를 키운건 팔할이 조선일보와 한나라당

美선 진짜‘영화정치’ [조선일보 2005-01-25 18:19]
감독·제작자는… 70·80년대 운동권 진보성향 인물들 [조선일보 2005-01-25 18:16]
‘정치 영화’인가…‘영화 정치’인가 [조선일보 2005-01-25 18:16]
논란의 ‘그때 그사람들’, “블랙코미디다vs다큐드라마다” [조선일보 2005-01-25 18:23]
냉소주의로 재구성한 ‘10·26’ [조선일보 2005-01-25 18:22]
임권택 감독, 베를린영화제서 특별회고전 [조선일보 2005-01-25 18:21]
“과거사 일방 왜곡해 전달 우려” “진실여부 관객이 판단할 문제” [조선일보 2005-01-25 18:20]

Naver의 영화 분야 기사 리스트중의 일부다.

임상수의 영화 ‘ 그때 그사람들’에 대한 관련기사가 무려 6개다.

이정도면 거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영화올림픽에서 금메달 수상작을 대하는 격이다.

조선일보의 히스테릭한 반응이 보여서 재미있다.

‘그때 그사람들’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팔할이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공일게다.

임상수의 영화는 한국사회에서 익숙한 것들을 불편하게 폭로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아왔다.

여성, 가족, 청소년 – 비주류의 편에서 주류를 공박하는 – 그러나 그러한 방식은 전면적인

것이라기보단 슬쩍 비켜서면서 냉소를 보내거나 비꼬는 형태였는데, 이영화 ‘그때 그사람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러한 방식은적당한 먹물로서 임상수의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러한 임상수의 영화는 조선일보의 꼰대 이데올로기와는 대척점을 이룬다.

이승만에 이어 한때 정조와 박정희를 견주면서, ‘국부’로서 메이크업 시켰던 전력이 있는

조선일보로서는 이 영화는 그냥 생까고 무시하는 것도 힘들었을 게다. 아래 조선일보의 영화리뷰만

보더라도, 이 영화를 대하는 조선일보의 적개심을 간취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화는 영화로

봐야한다’던 한나라당의 일부 후천성문화소양결핍증후군을 겪고 있는 작자들과 꼰대 조선일보는

결국 소규모 제작비와 스타하나 변변히 없는 작은 소품 영화를’티핑포인트’를 지나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 내었고,2월 설 연휴 시즌의必見영화로 격상시켰다.

결국 이번에도 조선일보는 당할꺼다. 한나라당도 별책부록으로 마찬가지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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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주의로 재구성한 ‘10·26’
[조선일보 2005-01-25 18:22]

“이 냄새가 말야, 단순한 구취가 아니라 내장에서 올라온다는 거야. 내가 이 냄새를 각하한테 풍겼으니. 죄송스럽게.” “누구라도 죽으면 다 냄새 피우는 쓰레기인 거요.”


‘냄새’ 피운 것을 자책하던 정보부 김부장(백윤식)은 각하(송재호)의 머리에 총을 쏘며 또 ‘냄새’를 말한다. 김부장에게 냄새는 부패한 권력의 다른 이름이었다. 영화 시사에 앞서 소문부터 무성했던 영화 ‘그때 그사람들’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시해일의 하루를 그린다.

“그러던 어느 날 박정희는 총에 맞았습니다”라는 ‘윤희 엄마’(윤여정)의 내레이션이 영화의 첫머리를 연다. 이어지는 화면은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는데, 정보부 주과장(한석규)은 청와대까지 찾아와 딸을 책임지라며 앙탈을 부리는 ‘엄마’를 혼내주고 투덜거리면서 저녁 연회를 준비한다. ‘거사’의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그때 그사람들’은 ‘10·26 사태’라는 애매한 표현의 사건을 기획, 실행, 목격한 사람은 누구인가를 재구성한다. “배꼽 아래 일은 따지지 않는 게 사나이야”(각하), “대장부라면 확실하게 끝맺어야 할 텐데”(김부장)의 일본어 대사를 통해 그들의 일본말은 뭔가 은밀한 대화나 결의를 표현하는 상징어였음을, 국가보안법의 적용사례로 농담을 하는 정보부 요원의 대사를 통해 그때가 자의적 악법의 시대였음을, “그깟 대위 출신 자식, 우리 장군들이 참아야지”라는 대사를 통해 경호실장 차지철에 대한 증오가 엄청났음을 회고한다.


회식을 준비하는 궁정동 안가로 옮아간 화면은 그 날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작성한다. ‘목숨을 건 거사’를 꾸미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진지하지는 않다. 멍청한 요원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진짜 쏘는 거 맞냐”고 되묻는다. 후일 형장에서 처형된 이들에게 그 날의 일은 ‘거사’가 아니라, 그저 ‘과장님’의 지시를 따른 결과였다. 영화는 역사란 권력자와 안티 권력자의 시소놀음이며, 민중은 놀음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한다.


‘눈물’이나 ‘바람난 가족’을 통해 지독한 냉소주의가 거꾸로 삶의 가장 충실한 조언자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임상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냉소에 기반한 ‘블랙 유머’로 영화가 다루는 소재의 민감성을 넘어서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건 의도에 그쳤을 뿐이다.


대통령은 배에 이어 다시 머리에 총을 맞기 전, “한 방 먹었다 아이가”라고 영화 ‘친구’의 장동건 식으로 말하고, 김부장은 머리채를 틀어쥐고 한 방을 더 ‘먹인다’.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희롱의 최대치다. 엔카를 부르던 가수 수봉과 ‘쿨한 년’이라고 자부하던 대학생이 사건 후 도망쳐 올라간 이층방에서 시시덕거리며 술을 마시는 대목에서, 감독은 공포의 극한에선 웃음이 난다고 말하고 싶은 듯하나, 그 블랙유머는 실패했다. 헌법을 뒤지는 한심한 국무위원들의 대사, 안가의 종업원들이 보일러실에 숨어 나름의 세계관을 피력하는 장면, 보안사에서 취조를 당하는 김재규가 “조국을 위해” 시해했다고 자백하는 대목, 생뚱맞게 시해 가담자들의 처형 장면을 내레이션으로 해설하는 대목에서도 블랙코미디적인 재치와 해학은 찾기 힘들다. 물론 안가를 적신 흥건한 피와 시체를 천장에서 내려찍은 장면의 미학적 완성도는 감동적이지만, 그러한 조롱은 무책임했다.


목숨 건 싸움에 “미친 놈들”이라 말하는 건 얼마나 쿨해 보이는가. 하지만 10·26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미친 놈들의 미친 짓”이라 말하는 건 지식인적 니힐리즘이 아니라, 무책임과 회피다. 이 맹목적 시니컬리즘은 나름의 존재적 이유로 충만했던 박정희와 김재규라는 두 인물의 진심을 어느 쪽도 설명하지 못한 채 그저 역사를 모독할 뿐이다. 이런 금기의 소재를 미진한 블랙코미디로 낭비해버린 건, 영화역사에 대한 실례다.


“박정희가 호색한이었다”거나 “박정희가 왜색을 좋아했다”는 영화 속 사실을 ‘박정희 폄하용’으로 쓰고 싶은 사람 이외에 이 영화를 통해 각성이나 감동을 얻을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 영화의 최대 악덕은 민감한 내용을 강하게 다뤘다는 게 아니라, 역사를 버릇없고 무책임하게 다뤘다는 점이다. 2월 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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