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싶다.

우도의 화가·오뎅가게 부부 안정희·편성운씨
제주도에서 동쪽으로 또 배를 타고 10여분 들어가면 닿는 섬이 우도다. 어느날 섬의 풍경에 반한 육지 처녀가 찾아와 섬과 사람을 그렸다. 육지 처녀에게 반한 보일러공 총각은 가슴 설레는 나날을 보냈다. 그 육지 처녀, 섬 총각은 지금 부부가 돼 우도에서 알콩달콩 살고 있다. 제주 바다보다 더 푸른 섬에서 일어난 한편의 동화다.

우도 하고도 최북단에는 흰 등대가 서있다. 그 등대 앞에서 안정희(34)·편성운(31)씨 부부가 운영하는 오뎅가게 ‘초록우도’를 만날 수 있다. 트럭을 개조해 만든 오뎅가게 주변에는 여행자의 눈길을 끄는 수채화가 전시돼 있다.

바위·파도·고래·등대·무지개·햇빛·돌담·땅콩…. 이런 조합, 저런 조합으로 만나 섬 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군가는 “샤갈의 그림처럼 환상적”이라며 좋아하고, 어떤 이는 “애들 장난 같다”며 그냥 스친다.

안씨는 지난달 갤러리 ‘제주 아트’에서 두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3년동안 우도에서 살며 그린 그림들을 전시했다. 고운 보라색 한복을 차려 입은 시어머니 강재덕씨(70)가 섬사람들을 이끌고 첫 배를 타고 나와 제일 먼저 전시장을 찾았다.

시어머니가 처음 안씨를 봤을 때는 마땅치 않았다. 치렁치렁한 옷차림에 자유분방한 행동이 눈꼴사나웠다. 아들보다 세살 연상인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지금은 2대 독자 아들보다 더 귀한 며느리다. “어멍! 새참으로 자장면 시켜줘.” 땡볕 아래 거친 바닷바람을 맞아 뽀얀 피부가 거뭇거뭇해진 안씨는 막내딸처럼 어리광을 부리며 까르르 잘도 웃는다. 어느새 마늘·땅콩·보리밭을 일구는 농사꾼이 다 됐다.

부부는 2001년 5월 지금 장사를 하고 있는 등대 앞에서 만났다. 부산대 미대 90학번인 안씨는 10년만에 학교를 졸업하고 몇달 뒤 혼자 우도를 찾았다. 대학때 친구들과 놀러와 마음을 사로잡힌 섬. 스케치하며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하는 여행이기도 했다.

스무살 때 부산 지하철 신문판매원으로 시작해 치킨·액세서리 장수, 재즈바 바텐더, 롯데월드 조각 제작 아르바이트생 등 안해본 일이 없다. 돈이 필요했지만 세상도 알고 싶었다. 온갖 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고,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마침 우도 총각은 전날 ‘어버이날 행사’를 마치고 마을 청년회원들과 남은 안주로 술 한잔을 나누고 있었다. 그 앞으로 안씨가 지나갔다. 두 사람은 쏟아질 것 같은 별빛을 받으며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긴 얘기를 나눴다. 육지 처녀는 곧 섬을 떠났다. 마음이 시렸지만 어쩔 수 없었던 우도 총각. 그저 바다만 바라본 지 1주일만에 육지 처녀가 돌아왔다. “우도에서 살겠다”며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부산 친정집은 난리가 났다. 어릴 적 수재 소리를 들으며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온 맏딸. 실망이 이만저만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에는 친정 부모를 비롯해 친지가 모두 찾아와 기뻐해줬다. 사촌오빠인 ‘안철수 연구소’의 안철수씨도 큰 꽃다발을 보내줬다.

등대 앞 장사는 지난 여름 시작했다. 적을 때는 하루 7,000원, 여름 휴가철에는 15만원을 벌 때도 있다. 그나마 바람이 세고 비오는 날이 많아 장사한 날이 많지 않다. 메뉴는 사발면, 김밥, 오리알, 음료, 그리고 문어가 듬뿍 들어간 해물파전.

안씨의 하루는 집에서 키우는 청둥오리 알을 거둬 삶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침 잠은 이웃 할망들이 알아서 깨워준다. 새벽 6시쯤이면 골목 어귀부터 “성운아, 성운이댁!” 외치며 찾아오는 할머니들이 수돗세, 전기세 영수증과 편지를 읽어달라며 단잠을 깨운다. 겨울에는 보일러공 남편이 바빠진다.

‘초록우도’는 나무 한 그루 없는 섬에서 여행자가 말 붙이며 잠시 쉴 수 있는 소중한 곳이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다음 카페 ‘초록우도’ 회원이 돼 추억을 남기고 있다. 혼자 자전거 여행을 온 위윤덕씨(36), ‘철인3종 대회’를 마치고 섬에 들른 김명호씨(52)도 벌써 친구가 돼 부부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잘 나가는 선물·옵션 딜러였던 위씨는 회사가 소속팀을 해체하는 바람에 며칠전 실업자가 된 신세였다. 생활 때문에 미뤘던 수영을 50살이 돼서야 배운 김씨는 “인생도 철인경기처럼 이 악물고 끝까지 가는 놈이 승자”라며 다독였다.

안씨의 그림은 세상살이에 찌든 사람에게 섬 풍경만큼이나 위안과 기쁨을 주고 있었다. 제주공업고등학교 재학때 색소폰을 배운 남편은 멋진 연주로 여행자의 텅빈 마음을 달랜다. 부부의 인심에 끌려 이들 집에서 며칠 신세지고 가는 여행자가 셀 수 없이 많다.

남편은 명랑한 아내가 좋다. 집안 분위기가 밝아졌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던 섬생활의 외로움을 아내가 씻어줬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여섯살 때 뭍에 나가 치른 장례식이 전부다. 아버지는 만화가였고, 1960년대 후반 ‘돌아오지 않는 해병’ 만화책을 발간해 국가보안법에 걸렸다. 수배생활 중 우도를 찾았고 어머니를 만났다.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날 때쯤 뭍에 일이 생겨 섬을 떠났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물질’을 잘하지 못했던 어머니는 우도 ‘파마쟁이’ ‘도나스쟁이’로 불리며 아들을 홀로 키웠다.

남편의 소원은 아내에게 작은 화랑을 만들어주는 것. 아내의 그림을 많은 사람에게 항상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먼 꿈이다. 당장 이번 전시회를 열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림엽서를 만들어 팔고 푼돈을 모아 ‘거금’을 모았다. 섬사람들도 거들었다.

개인전에 전시된 30여점 끝에는 초상화가 걸렸다. 섬의 궁핍한 새색시가 돈이 없어 선물로 그린 시어머니 얼굴. 중년의 한 일본 남자는 그림 앞에 한참을 서있다가 “내 어머니 같다”며 눈물짓고 돌아섰다.

누운 소 모양을 닮은 섬. 여행자의 눈에 섬은 한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폭풍우가 불어오면 지붕이 날아가고 어렵게 일군 농작물과 가축을 삼키는 모진 섬이기도 하다.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대로 거칠면 거친대로 웃고 눈물 흘리며 살 것이다. 소띠 남편, 인자한 시어멍과 함께 농사짓고 장사하고 그림 그리며…. 푸른 바다 위 섬에서는 삶이 곧 수채화였다.

〈제주/글 김희연·사진 박재찬기자 egghee@kyunghyang.com

오늘 아침에 이 글을 읽는데 말야 괜히 눈이 뜨거위지더라.

2 Comments

  1. 나.. 이 사람들 쬐끔 아는데… 님도 아셔요^^

  2. 오잉;?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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