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국가의 사생활6점
이응준 지음/민음사

애당초 대한민국에는 우파도 없었고 좌파도 없었어. 대한민국은 그래. 없는 것 있다고 우기는 게 대한민국이야. 안 그러면 그건 대한민국이 아니야. 우파가 뭐냐? 우파의 궁극적인 목표는 애국이야. 애국. 이렇게 애국 안하는 우파들이 어딨어? 오죽하면 일본 극우 애들이 자기네 역사관을 표절하지 말라고 걔들한테 화를 다 내냐? 좋아. 욕해야 되니까 까짓껏 우파가 있다고 치자. 마땅히 우파들이 앞장서서 해야 할 일들을 엉뚱한 놈들이 대신하면서 뺑이를 치잖아. 그러면 우파들이 그걸 또 가만 놔두지 않고 달려들어 탄압을 해요.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쟎냐. 나라와 민족이 작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였으니 나가서 용감히 싸워라. 언젠가 힘을 되찾으면 이 나라와 민족은 너만이 아닌 네 후손에게까지도 꼭 보답하마. 이런게 있어야 제대로된 우파의 국가인 거야. 독립운동? 야, 이젠 더러워서 지나가는 개들도 안 하겠다…………

…좌파? 이것도 욕해야 되니까 일단 있다고 치자. 걔들처럼 지독한 장사꾼들이 세상에 또 없어요. 나는 걔들이 잔대가리로는 더 재벌같아. 우파들은 무식해서 간단하기라도 하지. 걔들은 엄청 복잡한 속물들이예요. 남한의 좌파는 낭만주의였어. 청춘의 아련한 추억이고. 자아도취지. 억울하다? 야 성경 말씀에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가 뭔지 안다고 했어. 걔들이 나중에 온갖 분야에서 저마다 한자리씩 해먹고 한 일들이 뭐가 있어? 자기들 배불리고 어디가서 축사나 읽어대고 술자리에서 골빈년들이 어머, 선생님 정말요? 그러는 거나 즐기면서 마치 고독한 척 어른 행세한 것 말고 뭐가 있냐고. 진짜 사회주의자는 말이야, 제 애비가 정주영이라고 해도 사회주의자인 놈이어야해. 어디있냐? 그런 놈이……………

1. 2016년 남북이 흡수통일된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응준의 “국가의 사생활”을 읽다.
‘추상이 사망한 북과 욕망이 현실이 된 남’의 준비되지 않은 만남은 충돌을 일으키고,
 막연한 통일에 대한 당위 대신 구체적인 혼돈의 묘사를 통해,
남과 북의 국가, 사회, 그 속의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지랄맞은 세상은 더 혼돈스럽고 더 시끄러워야 하며,
더 많은 희생과 더 많은 눈물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 끝에, 변화를 위한 희망이 존재할 것임을 덧붙인다. (그 희망이 거짓된 희망일 지라도)

 

2.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며,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믿었던 혁명가들에 의해 
건설되었던 국가는 인간을 죽이는 체제로 변질되어 버렸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바다인 또하나의 국가는 그 욕망에 충실한 채로 타락했다.
당위로서의 통일이 아닌, 통일 이후 이 이질적인 두 세계를 충돌시킴으로서 작가는
하나의 근원을 가진, 두개의 이질적 세계를 적나라하고 냉정하게 드러내면서,
이 순간 이 땅의 비루한 현실을 은유한다.
쉽게 낙관하지도 않으며, 희망을 버리지도 않는다.
 소설의 마지막 2023년. 통일 이후 12년 뒤. 통일 대한민국은 여전히 아프다.

3. 이선우의 입을 빌어 작가는 변화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드러낸다.
하나의 알에서 비롯된 거대한 물고기 곤(鯤)과 그 크기를 알수 없는 거대한 새 붕(鵬)는
 해일과 폭풍을 타고 날아오르며, 변화는 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4. 마치 일본 소설의 한 경향처럼, 개인을 통한 세계의 투영은 우리시대 소설의 한 흐름이 된 것 같다.
얼마전 읽었던 “토모유키’를 비롯해, 김영하의 소설과 산문도 그렇고…지나친 감정의 과잉, 당위, 역사성을 강조하면서 ‘개인’, ‘나’가 사라졌던 자리의 뒤안에서,
반쯤은 반성하고 성찰할 여유가 생긴 것 일수 도 있고,
반쯤은 더 이상 큰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촌스럽고 낡은 것이 되어버린 것일 수도 있고.
천박하고, 속물적인 이 곳의 현실에 피로함을 느껴, 도망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구려 칙릿의 뒤를 이은 가뭄끝에 만난 오랫만에 읽을 만한 욕구를 일으키는 글이어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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