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ood Bye.

1995년 3월 31일 마지막 방송



꽃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지는 날그대와 헤어졌고요
그 만남이 첫만남이 아닙니다
그 이별이 첫이별이 아니구요


마당 한 모퉁이에 꽃씨를 뿌립니다
꽃피는 날에서 꽃지는 날까지
마음은 머리 풀어 헤치고 떠다닐 테지요


그대만이 떠나간 것이 아닙니다
꽃지는 날만이 괴로운 것이 아니고요
그대의 뒷모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나날이 새로 잎피는 길을 갑니다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영화 흑인 올훼 중에서 Manha De Carnaval, 카니발의 아침. 오늘 첫 곡으로 띄워 드렸습니다. 꽃 피는 날, 꽃 지는 날이라는, 제가 좋아하는 시인 구광본 시인의 시 중에서 한 귀절로 오늘 시작했는데요. 꽃 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 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싯귀는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반대네요. 제가 92년 가을에 방송을 시작했으니까 꽃 지는 날 그대와 만났고요. 이제 봄이니까 꽃 피는 날 헤어지는 셈이 되었네요.

오늘 여러분과 만나는 마지막 날인데요. 사실 지난 2주일 동안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동안 소개해 드리지 못한 엽서, 사연들을 어떻게 다 정리해서 소개해 드릴 수는없을까, 사실 그 동안 제가 엽서니 편지니 소개 못드린 것에 대해서 늘 죄송하게 생각한 것 아시죠? 그리고 또 MBC 레코드실에 올라가서 하루에 몇 십장씩 음반을 찾아오곤 했었는데요. 이곡도 들려 드리고 싶고 이곡도 들려 드리고 싶고 참 좋은 데, 끝나기 전에 더 좋은 곡을 한 곡이라도 들려 드리고 싶어서 마음이 급했는데, 참 그게 어떻게 보면 오만했다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 다음에도, 내일도 방송은 계속 되고요. 또 좋은 분이 좋은 곡을 들려 드릴테니까요. 자, 다음 곡 띄워 드리겠습니다.많은 분들이 청하신 곡인데요. 제가 방송을 맡은 후에 처음으로 시내에 나가서 구해온 앨범이에요. 제가 갖고 있는 앨범인데. 천장지구 중에서 Beyond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짧은 순간의 사랑.

(음악-짧은 순간의 사랑) / (CF) / (음악-Midnight Blues)

영화 ‘날이 새면 언제나’에 삽입된 Midnight Blues. 오늘은 좀 느낌이 다른 곡으로 들어 봤습니다. 쟝끄로드 보렐리가 연주했는데요. 사실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으로 들려 드려야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블루스를 좋아하게 만든 곡이었거든요. Midnight Blues. 그뒤에, 이곡을 들은 이후에 블루스,솔,재즈 이렇게 흑인음악에 모두 빠져들게 만든 그런 음악이었는데, 아, 오늘 제가 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죠. 그런데 어떡하죠? 한 시간을 제 얘기로 사실 꾸몄습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인사드리면서 그동안 여러분의 이야기만 들어 봤는데 제 영화들, 그러니까 제 인생에 남았던 사연있는 영화들도 한번쯤 소개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은임의 내 인생의 영화 다섯편, 오늘 소개해 드립니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은 제가 한 다섯살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요. 그러니까 영화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덕에 TV에서 영화하는 날은 밤 9시가 넘어서도 깨어있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냥 예쁜 사람들이 잔뜩 나오는 그 흑백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 보면서 자정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는 특혜까지 더불어서 누렸죠. 그러다가 처음으로 극장을 간 것이 한 일곱살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작은 TV의 흑백 화면만을 보다가 갑자기 엄청나게 큰 칼라 화면, 또 수많은 사람들, 거기에 평소에 이가 썩는다면서 금지되어 있었던 음료, 콜라, 오징어까지 제게 제공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 극장이란 곳 자체가 우선 저를 흥분하게 만들었는데 시장같기도 하고 또 서커스장 같기도 한 그 극장, 거기에 모험과 요술, 춤과 노래로 충만한 영화 그대로 영화는 제게 동화이고 또 축제이고 춤이기도 하고 꿈이기도 하고 뭐 이런 생각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그 영화를 본 뒤에 집에 들어와서 언니랑 저는 거실 소파 위를 겅중 겅중 뛰어 다니면서 한참동안, 한동안 계속 침침므리 침침므리 노래를 부르고 다녔기 때문에 어머니 속을 무던히도 썩였습니다. 제가 일곱살때 본 영화 Mary Poppins는 그렇게 제게 영화는 뭔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 무엇이라는 느낌을 가져다 주었지요.



(음악)


영화 Mary Poppins(메리 포핀스) 중에서 Chim Chim Cheree 였습니다.



내가 머리 감을 때는 엄마가 도와줍니다. 오늘도 엄마가 리본을 풀어 주고 샴푸를 묻혀 주었습니다.
‘머리냄새가 많이 나는구나.’엄마가 말했습니다. 자주 감는데도 내 머리에선 유난히 머리냄새가 많이 납니다. 샴푸거품을 내면서 엄마가 물었습니다. ‘니네반 아이 중에서 공부를 못하거나, 가난하거나, 더럽거나,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아이가 있는데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니??’ 나는 샴푸거품 때문에 눈을 꼭 감은채 가만히 엎드려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예쁘고 명랑하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까요.
엄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너는 머리냄새가 나는 아이다. 기억해라. 가난하거나, 더럽거나, 다리를 저는 아이를 보거든
아, 참! 나는 머리냄새가 나는 아이지! 하고……. 그러면 그 아이들과 네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제가 좋아하는 책의 한 귀절인데요. 저는 종종 이 책을 다시 읽곤 합니다. 그리고 방금 들려 드린 그 글은 국민학교 6학년때 제가 TV에서 본 ‘뒷골목의 미소’라는 흑백영화를 봤을 때의 바로 그 느낌을 떠 올리게 해요. 뒷골목의 미소. 그 일년내내 뜨겁고 습한 증기로 가득 찬 세탁소에서 일하는 젊은 아가씨, 또 언젠가는 세계의 권투 챔피언이 되기를 꿈꾸는 건달, 구두 수선공, 신문팔이, 뭐 생선가게 아줌마, 그야말로 뒷골목 사람들의 삶의 얘기가 생생하게 담겨진 그런 영화였는데요. 그전까지 제가 좋아하는 영화와는 정반대의 영화였습니다.

저는 치렁 치렁거리는 드레스에 예쁜 남녀 주인공 공주나 귀족의 화려한 생활들이 담긴 영화들을 좋아했는데 이 영화는 그동안 제가 보아온 그런 영화 속에서는 아주 비굴하거나 악하게 그려졌던 직업의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인물이 이 영화에선 전혀 다르게 묘사 됐습니다. 그 비천한 아주 뒷골목 삶속에서도 건강하고도 선한 심성을 잃지 않는 또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화려한 영화의 들러리 악당이나 거지가 아니라 그들이 바로 주인공인 이 영화는 그당시 굉장히 큰 충격을 안겨다 줬는데요. 특히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그들의 모습, 유니콘을 기다리는 꼬마라든지, 예언자같은 할아버지의 모습은 그 뒤에 제가 사람을, 세계를 보는 눈을 좀 바꿔준 그런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리고 10여년이 흐른 뒤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된 봉천동 달동네에서 저는 그들의 모습과 똑같은 그런 건강한 삶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음악)



이영화 역시 그 뒷골목 인생의 삶들이 나오고 있죠. 제가 본 영화, 뒷골목의 미소처럼 꿈을, 희망을 의미하면서 끝나지는 않지만.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중에서 A Love Idea 였습니다.


저는 영화제목, 제작년도, 제작사, 남녀 주인공, 영화 줄거리, 또 감상 이렇게 국민학교 이후에 고등학교때까지 계속 꼬박꼬박 공책에 적어 가면서 이렇게 영화를 봤는데요. TV 영화는 거의 빼놓지 않고 봤던 것 같아요. 그래서 토요일 오후만 되면 친구들이 오늘밤에 TV 영화 뭘 보면 좋겠냐고 친구들이 물어 왔었고요. 또 자율학습 시간에는 앞에 나가서 영화 얘기 해달라고 그래 가지고 몸짓 섞어가면서 이것저것 해주던 그런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영화광이라고 불렸었는데 그렇게 영화없이는 상상할수 없는 생활에 변화가 왔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부터였는데요. 80년대 후반에 대학 생활을 시작한 저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한꺼번에 알게 되서 그 당시에 가슴이 터지는것 같았어요. 그래서 영화가 우습게 느껴졌고 특히 미국 영화 좋아하는 것은 죄처럼 그렇게 느껴졌었어요.그래서 그런 시절들, 좀 암울한 시절들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져서 점점 저는 지치기 시작했고요. 그 당시 학생들이 다 그랬던 것 같애요. 혼자 다닐때도 많았고 영화도 그 당시에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혼자 본 영화는 전형적인 헐리웃 영화였는데요. 바로 ‘다이하드’ 였습니다. 극장에 혼자 앉아서 정신없이 영화에 빠져 들었고 극장문을 나섰죠. 그리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까 지갑이 없어졌어요.



당시에 지하철 요금은 200원 이었는데요. 그래서 길가는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학생증을 보여주면서 200원만 빌려 달라고 부탁을 했죠. 하지만 제가 성공한 것은, 200원을 얻은 것은 꼭 다섯번째 사람에게서 였습니다. 어, 그런데 그분은 참 부드러운 인상의 노신사였고요. 이백원이 아니라 천원을 제게 줬습니다. 제가 사양하는데도 그 천원을 줬고요. 그 돈으로 지하철 표를 사고 나서도 돈이 한참 남아서 과자랑 아이스 크림까지 사 먹으면서 마치 부자가 된 기분으로 지하철을 탔었던 그런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왜 그랬는지 그 이후에 다시 좀 힘 같은게 생기더라고요. 자, 이 영화, 그래서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었는데요. 다이 하드의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가 영화 속에서 노래도 하지요? 허드슨 호크 중에서 부르는 노래입니다. Swimming On A Star.



(음악)



사람이 나이가 들면 점점 그 젊은날의 생각했던 것들이 많이 지워지게 마련인 것 같애요. 이상은 흐려지고 또 잊혀지고요. 그러면서 자신을 합리화 시키면서 기성 세대랑 타협하기 마련인데, 그러면서 자신의 젊은날을 또 비판하기도 하죠. ‘그땐 뭘 몰랐어, 철이 없었어, 이제는 세상사는 법을 알아…’ 그리고는 무조건 둥글둥글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철학을 갖고 이상을, 자신의 이상을 삶속에 실현 시키는 사람을 보면 참 존경스럽고 그 용기에 우선 감탄하게 되는데요. 영화 속에서 제가 그런 사람을 한명 발견했습니다.



한 가족의 이야기였는데요. 부부와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름과 머리색과 사는 곳을 계속해서 바꿉니다. 젊은날에 그 폭력적인 반정부 활동으로 부모가 쫓겨 다니는 신세였기 때문이죠. 그러면서도 사랑과 행복으로 살아가던 이들에게 어느날 커다란 문제가 생깁니다. 재능이 있는 큰 아들의 대학진학, 그러니까 신분이 밝혀질 수밖에 없는 그런 위험에 처해 있었던거죠. 그렇게 떠돌아 다니는 부평초같은 삶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았던 부모들, 그들은 그래서 잠시 머무르다 떠날지라도 그 지역의 사회운동과 인권운동에 불을 지펴 왔었는데요. 처음으로 그들의 젊은날을 후회합니다. 자신들의 과거가 아들의 미래를 묶어 버렸기 때문이죠. 아내가 울면서 남편에게 말합니다. ‘혹시 우리가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닐까요??그러자 남편이 이렇게 얘기했죠. ‘아니야, 우리 아이들을 보라고, 얼마나 똑똑하고 건강하게 자랐는지. 남을 배려하고 사랑할 줄 알고 또 세상에 대해서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잖아? 저렇게 착하게 커온 아이들만 보더라도 우리가 잘못 살아온것은 아니야.’ 그리고는 아들을 떠나 보냅니다.



영화 ‘허공의 질주’를 제가 MBC에 입사한 이후에 봤는데요. 그 헐리웃이라는 한정된 공간안에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았던 시드니 루멧 감독의 그 담담한 연출에 아들로 나왔던 그 리버 피닉스의 상처입은 착한 그런 연기가 가슴을 파고 들었죠. 참 그 뒤에 저는 그렇게 상처 입고 그러면서도 착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려는 그런 인물들만 보면, 그런 영화의 주인공들만 보면 가슴이 찡해오는지 모르겠어요.


제임스 테일러가 부른 노래가 이 영화에 삽입되어 있지요? Fire and Rain.



(음악)



창피한 고백을 하자면요. 저는 유난히 눈물샘이 발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눈물이 나오면 금새 코랑 눈주위가 빨갛게 부어 올라서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는 아주 촌스러운 체질인데요. 그래서 슬픈 영화를 볼 때는 이를 악물고 눈에 힘을 주고요. 그래서 그 뒤에는 되도록이면 보지 않으려고 했고요. 영화를 볼 때는 이리저리 뜯어서 영화 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냉정하게 보는 습관이 저절로 길러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펑펑 울면서 본 영화가 있어요. 이미 본 사람이 제게 권해 주면서 코미디처럼 재밌다고 한 다큐멘터리인데요.



바로 ‘로저와 나’ 입니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 제네럴 모터사의 회장 로저 스미스가 로저고요. 그를 4년동안 쫓아다닌 나, 마이클 무어 감독이 바로 ME, 제목의 주인공이에요. 미국의 플린트라는 마을에서 제네럴 모터스 공장이 폐쇄 되는데요. 그러자 4만명의 실업자가 생깁니다. 그들과 그들 가족들은 삶의 기반을 빼앗기게 되고요. 영화는 이 플린트 마을 사람들의 인터뷰로 꾸며져 있는데, 참 슬픈 얘기예요. 듣고 보면 슬픈 얘긴데 이 영화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장면이라든지 음악 이런 것들이 아주 독특한 편집 기법으로 되어 있어서 이 다큐멘터리는 마치 코미디 영화같이 그렇게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하지만 그 서글픈 웃음 속에 힘든, 그 뿌리뽑힌 삶과 그들의 진실을 전하려고 한 감독의 땀이 느껴지는 영화예요. 마치 바위에 달걀치기처럼 거대 자본가에게 끊임없이 문전박대 당하는 허름한 옷차림의 그 감독이 영화를 보면서 존경스러워 졌는데요. 또 영화를 보면서 제가 너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 옳은 일에는 굽히지 않고 또 치열하게 살자, 학창 시절에는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새삼 떠올랐고 또 참 많이 무뎌졌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떠올랐거든요. 건강한 사람이란 또 건강한 사회란 고인 물을 흔들어주는 세력이 꼭 있어야 하고 그 흐르는 물, 그 젊은 힘이 되고 싶었는데 어느덧 참 편한데 몸이 길들여진 것 같습니다.



(음악/음악)



네. 두 곡 이어서 들으셨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Roser and Me 중에서 스위트 곤잘레스, 팻분의 음성 들으셨고요. 이어서 Commitment 중에서 모스탕 셀리, 모스탕 셀리 들으셨습니다.



음, 이제는 내 인생의 영화 다섯 편을 소개해 드리고 나니까 굉장히 쑥스러운데요, 이거. 참 내인생의 영화 다섯편을 그동안 선정을 하면서 그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아, 이거 다섯편만 고르라고 하는 것이 어쩌면 조금 부담이 될 수도 있었겠다, 잔인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영화를 참 많이 보잖아요. 그리고 영화에는 혼자보는 영화도 있지만 보통 친구들 주위사람들, 뭐 여러가지 영화와 영화관과 그에 관련된 얘기들이 많이 있을텐데 그중에서 다섯가지만 고른다는 것은 힘든 작업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젠 마지막 인사를 정말 드려야겠네요.



어, 이 FM 영화음악을 제가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서 처음으로 맡은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그러니까 정식으로 그전에 TV를 임시로 맡은 것도 있었지만 정식으로 맡은것은 이 라디오 프로그램 FM 영화음악이 처음이었어요. 그 때가 1992년 11월2일이었는데 정말 덜덜 떨면서 첫 방송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방송을 너무 못한다고 홍동식 프로듀서 한테 참, 그 당시 같이 했던 홍동식 프로듀서한테 조금 얘기도 듣고 힘들게도 해드렸는데 이상하게도 제가 TV 카메라를 보면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 웃음이 나와서 떨리지도 않고 기분이 좋고 그랬는데 라디오는 그 정반대였습니다. 이렇게 라디오를 통해서는 어쩐지 마음이 드러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특히 제가 가까운 사람에게는 속얘기를 별로 잘 털어놓지 않는 성격이라서, 시작할 때는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때는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스튜디오 안에 들어오면 수다쟁이가 돼 버렸죠. 마치 매일 만나는 친구처럼 항상 할 말이 많았고요. FM 방송이니까 말은 좀 줄여야겠다라고 생각해도 왜 이렇게 말이 많이 나오는지. 그러면서도 방송이 끝나면 항상 다하지 못한 말이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뭔가 특별한 날 아침 햇살이 남다르게 느껴질 때라든지, 아주 예쁜 꽃을 봤을 때, 낮에 길거리에서 특별한 광경을 봤을때, 책에서 멋진 글을 발견 했을 때, 그럴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이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엔 꼭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굉장히 가슴 두근거리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고 또 어떨 때는 마이크 앞에서 막 숨막힐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었어요. 그래서 문득, 뭐 이거 꼭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과. 아마도 제가 언젠가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DJ는 뭐 프로그램과 연애를 한다.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실감하지를 못했었는데 정말 제가 프로그램을 하면서 그런 것을 실감을 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사랑에 취해서 그동안 결혼이란 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듭니다.



참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여러분께요. 무엇보다도 제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또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하는 일들 또 여러분들의 고민, 살아가는 얘기들, 나랑 다른 생각들, 이런 것들을 접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어, 또 예전에 산발적으로 보아왔던 영화책들도 이제 좀 더 체계를 세워 가면서 보게 됐고요. 영화 공부를 좀더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도 하게 됐고요. 영화에 대해서 또 음악에 대해서 즐겁게 아주 뜨겁게 얘기하는 시간이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여러분은, 저는 좋았는데, 여러분은 느끼하고 싫고 참 그런 시간 빨리 가서 좋다, 뭐 이렇게 생각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여하튼 저에 대해서 그동안 비판도 해주시고 비난도 해주신 분들. 충고 조언해 주신 분들. 격려와 사랑을 보내 주신 분들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방송하는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 바로 이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2년 반 동안 참 많은 분들을 만났고요. 소중한 인연을 맺은것 같습니다. 자, 이제 새로운 진행자가 또 여러분과 인연을 맺게 됐는데요. 배유정씨 라고 아마 제게 부족했던 점들을 다 메워줄 수 있는 그런 분 같아요. 아주 능력있고 또 참 좋은 분이라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여러분의 밤 에 아주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 정말로 편안한 밤을 만들어 드릴테니 여러분도 FM 영화음악을 계속해서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 정은임은 여기서 인사드릴께요. 우리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중에서 김창완 씨의 노래 ‘마지막 인사’ 로 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퇴근후, 습관적으로 들렀던 어느 사이트 한구석에선, 그녀의 죽음을알리고 있었다.


‘MBC 정은임 아나운서, 결국 사망’


한시대, 은밀하게 위로받았던, 감수성이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명복을 빈다.



아름다운 사람, 눈물이 많았던,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



그녀가 좋아했던 영화, Stand by Me의 마지막 장면.


영화 속 고디의 컴퓨터 화면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깜빡거린다.



“I never had any friedns later on like the ones I had when I was twelve. Does anyone?”


“난 그 이후로는 열두살때 친구같은 친구들을 갖지 못했다. 남들도 그렇지 않을까..”



1995년 3월 31일 FM영화음악 마지막 방송


4 Comments

  1. 비가 많이 오죠.
    마음속의 悲도.

    영원히 살아계실 거예요.

  2. 정말.. 그립습니다.. 정말.. 정말..

    p.s 이 mp3를 가져 가고 싶지만.. 그게 더 힘들지도 모르겠군요..
    방송 대본 앞 부분 내용.. 조금 발췌해 갑니다.. 혹.. 기분이 나쁘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 감사히 담아갈게요

  4. 정은임 아나운서 3주기라 여러 자료를 찾아보다가 우연히 들르게 되었습니다. 감사히 잘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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